지난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함께하는 동학기행에 다녀왔다. 올해로 12년째 이어가고 있는 과거를 딛고 일어서 밝은 미래관계를 열어가기 위한 노력의 한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이었기에 일정이 촘촘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가자 모두 더 많은 곳을 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컸다. 올해는 특히 청년들이 함께해서 의미가 있었다. 이 청년들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직업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참가한 참가자들과 청년들이 일정을 함께 하면서 일정을 진행할수록 한일 간의 이해와 밝은미래관계를 이루려는 교류의 진정한 목표를 이뤄가고 있는 것 같았다.
12년의 한일시민교류, 120년을 걷다
올해 동학기행은 경복궁에서 출발했다. 일본군이 조선 왕궁을 점령했던 그 현장을 돌아보며 동학농민혁명을 중심으로 일본제국이 조선을 침탈했던 수난의 역사를 가슴 아프게 돌아보았다. 서울에서 시작된 기행은 경복궁과 고궁박물관,그리고 조선이 나라를 빼앗긴 결정적 분수령이 되는 사건, 을사늑약의 현장인 중명전을 둘러보았다.(중명전은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었던 비운(悲運)의 장소이기도 하다.)
일정을 마치고 전주로 이동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봉안한 경기전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출입문인 풍남문을 둘러보았다. 풍남문은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원평 집강소와 완산공원, 동학농민혁명군 전주입성비, 구미란 최후전투지를 견학했다.
원형집강소는 1882년에 지어졌으며 집강소로 활용된 이후에는 금산면사무소, 불법연구회(원불교) 교당, 개인 주택 등으로 사용되었다. 2014년 문화재청은 원평집강소의 가치를 인정하여 긴급 매입하였고 2015년 12월에 동학농민혁명 집강소 시기 원형으로 보수 정비를 완료했다. 한일 교류단이 원평 집강소를 방문했을 때 교류단을 환영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최고원 씨는 원평집강소에 대한 설명과 함께 “동록개의 꿈”을 소개했다. 동록개는 백정이었다. 신분 차별을 받던동록개는 사람이 하늘인 세상,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집을 헌납했고 그 정신과 꿈을 이어가고자 “동록개의 꿈”이라는 장승이세워졌다.기행과 함께 콜로키움도 마련되었다. 한국 연구재단 후원, 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소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주최한 이 행사는 원광대학교 내 숭산기념관 세미나실에서 개최되었으며 기행을 함께한 나카츠카 아키라, 박맹수 교수 외에도 기타지마 기신, 변영호, 카타오카 류교수를 비롯한 일본 시민운동가와 미국 시민운동가 정연진 씨를 비롯해 원불교사상연구원 공공성 프로젝트 참가자, 동학공부모임 참여자 등이 모여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이번 발표에서 나카츠카 교수는 청일전쟁 당시 일본 외무대신 무츠 무네미츠가 남긴 사료집 ‘건건록(蹇蹇錄)’의 중요성을 언급하였고, 일본육군 참모본부 기록 분석을 통해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이 조선국왕을 포로로 삼기 위한 것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또 원불교사상연구원장 박맹수 교수는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의 평화사상을 네 가지 영역으로 고찰하고, 동학농민혁명이 민족적 보수적 측면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인류의 평화와 생명을 존중한 보편적 가치였음을 밝혔다.
내년에 다시 만납시다
4박 5일간의 동학기행은 큰 의미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역사를 바로 알기위해 노력하는 시민활동가와 학자들이 모여 과거를 딛고 일어서려는 이 시도는 해마다 다음을 약속했다. 기행의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오면서 삼례동학공원, 대둔산전투지, 연산전투지, 공주 우금치전투지를 견학했다. 기행 중에 박맹수 교수의 한국어와 일본어 동시통역으로 진행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지면에 소개하고 싶다. 인상적이었던 장소는 삼례 동학공원이었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중심지로, 일본군의 노골적인 침략행위를 배격하며 일어난 농민군의 항일투쟁 역사적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