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채원

보은에서 다시, 말을 걸다

― 제21회 126보은취회를 마치고

지금 저는 어디쯤 서 있습니까
당신들이 꿈꾼 세상 어디쯤 저도 있습니까
저희의 노래를 들으셨습니까
한 판 춤을 추며 흘린 눈물들을 보셨습니까
속울음을 울며 새 날을 맞습니다.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자리들이 있다. 지난 20년간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어온 보은취회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해마다 자연스럽게 모이는 생명력이있다.
올해 보은취회는 <다시, 말을 걸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1998년 <솟대장승굿, 이 땅에 지킴이가 서다>라는 작은 행사로 시작된 보은취회는 해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뭉쳤다 흩어지고, 커졌다 작아지기도 하며 ‘보은취회’가 가진 자율성과 주체성의 토대로 스무 살의 청년이 된 것이다.

보은취회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글쓴이는 보은취회를 준비하며 <보은취회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시리즈를 카드뉴스와 함께 7편을 제작했다. 지난 20년을 거슬러, 또 125년 전 이곳 보은으로 향하던 새 세상을 꿈꿨던 보은취회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선무사 어윤중에 의하면, 1893년 보은취회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러했다.(어윤중-보은집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파견된 관리-은 보은취회에 모인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분류하였다.)
① 재기가 조금 있으나 뜻을 얻지 못한 자
② 탐학이 횡행하는 것을 분하게 여겨 백성을 인민을 위해 목숨을 바쳐 그것을 제어하려는 자
③ 외이(外夷)가 우리의 이원(利源)을 빼앗는 것을 통분으로 여겨 망령되게 큰소리치는 자
④ 탐관오리의 침학을 받으면서도 호소할 길이 없는 자
⑤ 경향에서 토호(土毫)의 무단(武斷)에 위협받아 스스로 보전할 길이 없는 자
⑥ 경외(京外)에서 죄를 짓고 살기 위해 도망한 자
⑦ 영읍(營邑)의 속리(屬吏)로서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자
⑧ 농사를 지어도 남는 곡식이 없는 자와 상업을 하여도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자
⑨ 우매한 자로 풍문으로 듣고 들어와 낙지(樂地)로 삼는 자
⑩ 부채에 시달려 견디지 못하는 자
⑪ 상천(常賤)으로서 신분을 벗어나기를 원하는 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절박한 현실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또 눈에 띄는 문장은 1893년의 보은집회는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평화집회였으며, 이들의 모습이 매우 질서정연 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청결을 유지하였으며, 조금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문장이다.
이는 비폭력 저항을 기치로 내세웠던 3.1운동을 떠올리게 하며, 나아가 지금 이 시대의 촛불집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람장승이 서다
보은취회에 가면 곳곳에 장승이 서 있다. 그 중 눈길이 가는 ‘거꾸로 장승’은 말 그대로 거꾸로 태어났다. 보통은 뿌리가 하늘로 향하게 세우지만 이들이 3년 전에 세운 이 장승은 반대로 서 있다. 이번 보은취회에 준비된 사람장승은 그것과 연결된다.
글씨 쓰는 장승으로 보은취회에 서 있는 바우솔(김진호, 대전)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글씨를 써 주며 그들의 삶을 어루만졌다. 글씨를 마주한 사람들은 그 안에 자신들의 꿈, 삶의 방향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칼 춤 추는 장승 석포(감병만, 창원)는 보은취회 첫 날, 행사의 문을 열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검무를 선보이며 노을에 물들어가는 하늘에 여기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지를 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들살이 장승 팔공(이상환, 보은)은 10년째 이곳 보은에서 해마다 들살이를 준비해 오며 느꼈던 하늘과 땅 사이에 우리는 늘 새롭게 태어나고 있으며 끊임없이 서로를 감싸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사람을 통해 용기를 얻고 실천하는 삶의 자세로 전환하는 이야기를 전했다.
시 읽는 장승 신채원(글쓴이, 서울)은 연구자로서 활동가로서 만나는 상처 많은 삶의 조각들로 쓴 시를 읽었다.
이 밖에도 현장에서 장승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말하고 듣는 장승들이 현장을 가득 채워가는 순간이었다.
이 제호 글씨는 보은 취회 기간 중 바우솔 님이 써 주신 것입니다. <개벽신문> 식구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제호 변경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다시 한 걸음!

풍류마당-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둘러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마이크도 반주도 없었지만, 함께 부른 노래들은 서로에게 빛나는 별들이 되어 바쁜 일상에서 잊었던 곁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게 했다. 그날 밤 부르던 노래는 멈추지 않고 지금도 흐르고 있을 것만 같다.

개벽톡톡-<개벽세상의 꿈, 그리고 보은취회>
이번 보은취회의 중심 행사라고 할 수 있는 토크쇼, <개벽톡톡 개벽세상의꿈, 그리고 보은취회>는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조성환 박사와 신채원(글쓴이, 개벽신문 편집위원)이 준비했다. 조성환 박사는 개벽세상의 꿈이 자율과 협동의 측면에서 보은취회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 같아서 놀랍고 기대된다는 말로 시작하여 보은취회가 실천하고 있는 개벽의 이상이 한국사회로 퍼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했다.(24쪽 참조)

보은취회, 다시 말을 걸다-다시 길을 걷다
책에서 나오는 말들로 세상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역사는 사실상 그렇게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목숨들이 써 내려왔다.
보은취회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93년 이곳 보은에서 열렸다. ‘새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이었다.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 가면 동학농민혁명군 위령탑이 있다. 깊은 밤 탑에 올라 술을 한 잔 올렸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120년 전의 그들처럼 주문을 외워보았다. 1893년의 보은취회와 2019년 오늘의 보은취회가 만나, 공동체의식을 회복하고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보은취회는 이렇게 다시, 말을 거는 것으로 문을 열고 닫는다. 닫힌 문은 또 다른 문을 열게 할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보은취회가 어떤 문을 열고 말을 걸어 올지 이제 들어 볼 차례다.
보은취회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룰 때, 더큰 의미로 남는다. 서로의 하늘에 기대어 실천적 삶의 방향으로 개벽의 길 찾기를 손 모은다.

제21회 126보은취회 현장사진들
개벽토크쇼, 찾아가는 동학강좌,
사람장승-글씨쓰는장승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 세워진 위령탑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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