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채원

“마을 문화를 통해 생명살림을 알아갔으면”

– 마을문화공동체와 여성생명살림을 실천하는 가배울 김정희 대표

– 마을문화공동체와 여성생명살림을 실천하는 가배울 김정희 대표작년 어느 여름날에도 ‘올해는 유난히 뜨겁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이 시절, 우리는 하루하루 또 얼마나 많은 ‘유난히 뜨거운’ 날들을 맞이하고 있을까요. 언제인지 모를, 어디인지 모를 세상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저 여름 한철 견뎌내듯 건너가 보아야 아는 거겠지요. 내가 당신을 만난 것처럼, 당신이 나를 만난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정해진 길을 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성학을 공부했고요, ‘가배울’이라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배울’은 전남 강진에서 시작되었고요, 생태·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살림문화 교육 사업을 비롯한 생태마을 조성 사업을 하고 있으며, 사라져가는 농촌문화를 살리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배울’의 가배라는 말은 추석의 옛말입니다. 신라시대 때 6부 여성들이 추석에는 반으로 갈라져 한 달간 길쌈 시합을 했다고 해요. 한 달 동안 관솔불을 밝혔는데 ‘한밤중이 대낮 같았다’고 기록에 나와 있어요. 굉장히 큰 축제였던 거죠. 그야말로 일과 노동이 어우러진 여성의 축제였는데, 비록 그때가 계급사회였지만 축제라는 틀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실현된 공간이었다고 봅니다. ‘가배’는 그런 공동체적 의미를 담아 낸 말이고요. ‘울’은 울타리입니다. 마을이라는 말이 원래는 고어로 마‘울’이었어요. 그렇게 ‘가배울’은 여성의 공동체적 축제의 의미를 담은 가배와 마을의 의미를 합쳐 만들어졌습니다.

특별히 강진이라는 지역에서 시작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정부 지원 프로젝트 때문에 강진을 여러 번 가다 보니 자세히 보게 되었어요. 아름다웠어요. 넓은 면적에 인구는 겨우 4만으로 매우 적어요. 한편으론 강진의 마을문화를 보면서 농촌 문제가 와 닿았어요. 오늘날 고령화가 사회적인 이슈인데, 강진은 그중에서도 더 심각하게 고령화된 지역입니다. 생협 활동을 하며 농촌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 95%가 도시화되었다는 말을 체감하면서, 대안을 찾고 싶었어요. 또 다른 이유로는, 사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마을 자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강진이라는 마을을 통해 시골의 문화들을 보고 이해하고 보니, ‘아 어떡하나?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마을문화가 어떻게 될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어요.

마을의 어떤 문화들이 특별히 와 닿으셨나요?

쉽게 말하면 ‘촌문화’죠. 장이나 액젓도 담고, 직접 씨를 받아 농사를 짓는 그런 농사문화들 하나하나가 보배인 거죠. 그런 귀중한 농촌마을 문화가 어렵사리 살아남아 있는데, 그 문화가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가 컸어요. 그런 것들이 곧 문화유산인데 말이죠. 그래서 ‘가배울’이라는 단체를 만들게 된 거예요. 가배울은 시골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화답사, 도농직거래 등을 하고 있어요.

일종의 테마여행이네요? 마을문화답사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우선 마을로 들어가요. 마을답사가 시작되죠. 가능한 여행자들이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요. 스스로 농민이 되는 거죠. 가배울은 그런 마을 문화답사 콘텐츠를 만들어요. 그리고 강진에서는 특별히 문화 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많이 만났어요. 『남도여성과 살림예술』이라는 책도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요. 저도 여성학을 했고 남도의 여성들을 만나면서 생명력이 강한 여성살림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죠.
어쩌면 강진과의 만남은 필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남도 여성들을 만나면서 깊이 빠져 든,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살림은 무엇인가요?

먼저 ‘살림’이라는 그 말의 놀라운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건 ‘죽임’의 반대말이잖아요. 인간이 말을 언제부터 시작했을까요? 7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라고 하더군요. 남성과 여성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언어 능력이예요. 여자는 평균적으로 언어 능력이 남성들보다 우월하거든요. 사람과 원숭이를 비교하면, 새끼원숭이는 어미에게 딱 달라붙어요. 하지만 인간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안고 이동하죠. 바로 그러한 생물학적인 무능함 때문에 의사소통의 필요가 절실했을 겁니다. 그게 아마 언어의 출발이 되었을 거라고 인류학자들이 추정합니다. 살림이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일 ‘살리는 일’이라는 일종의 깨달음을 담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아마도 여성들이 만들어냈을 거고요. ‘살림’이라는 말이 얼마나 오래된 말일까 생각을 해볼 수 있죠.

살림이라는 말의 역사가 그토록 깊은 의미였군요.

깨달음의 말이죠, 예수님 이전에 예수가 없었을까?, 부처님 이전에 부처가 없었을까? 생각해 보면, 처음에 인간이 수렵 채집하는 단순한 생활을 하다가 엮음 기술을 터득해서 그것으로 오두막을 짓고 바느질도 하는 발명이 이루어집니다. 그러한 과정들이 당시로서는 인간이 발전해 가는 혁명이 아니었을까요? 그 하나하나를 뛰어넘는 모든 경험들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을 거예요. 그 경지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경지와 같을 거라는 거죠. 우리 여성 선조들이 굉장했구나 생각하게 되는 단서들이 바로 살림의 역사입니다.

여성생명살림의 전통적 활동 사례들을 예를 들어 설명하신다면?

강강술래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강강술래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어요. 마을에서 부녀자들이 췄던 춤이에요. 누구나 쉽게 출 수 있는 춤이죠. 지역마다 노래를 다르게 개사해서 부르기도 했고요. 삶이 힘들잖아요. 그 고된 삶 속에 해방된 순간이 있어야 했겠죠. 사회질서가 녹록치 않았고양반과 노비가 있었고 착취 받는 서민이 있었고, 얼마나 피폐했겠어요? 탈춤놀이를 보면 탈을 쓰고 양반이나 지배계급을 풍자하기도 했죠. 그걸 알고도 그냥뒀잖아요. 지배계급이 허용했거든요. 해방의 공간이 없으면 생존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다시 여성의 살림이라는 주제로 돌아와서, 현대적 관점에서 여성살림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성주의는 여자들이 존재성을 찾고 현재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문자시대가 되면서 철학이 생기고 학문이 생기는데 그때는 이미 가부장적인 사회여서 철학과 학문은 모두 남자들이 독점합니다. 여자들은 배제되죠. 그래서 안타깝게도 여성 지식인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거죠. 분명 있었겠죠. 여성들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출중했는가는 앞서 이야기했듯 ‘살림’이라는 단어 하나가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여성들은 생명을 낳고 키워 살려내잖아요.

여성의 생명살림은 모성이 기반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네요?

‘살림 감수성’이라고 하죠. 여성의 모성은 수유의 경험으로 더 풍부해진다고 볼수 있습니다. 여성은 수유를 하니까 집중적인 모성 기간이 있어요. 생물사회적인 조건이 다르니까요. 조금 종교적으로 접근해 보죠. 종교의 출발은 유한한 존재로서 자기의 종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의 성찰의 과정을 통해서, 또 과거 자연의 위협 앞에서 느끼는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종교적이고 영적인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종교, 신화적으로 여성 살림의 영성, 모성을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종교라고 봅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결국 삶 앞에서 성찰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닐까요? 마을 굿이나 종교의식 등에서도 선조들께 후손을 부탁하잖아요.
생존 자체가 위태로웠으니까요. 그 위태로움과 절박함은 종교적 영성과 연결되죠. 여성이 아이를 직접 낳고 수유를 하는 과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생명을살려야 한다는 본능적 책임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어머니세요? 또 선생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저는 대단히 모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바쁜 엄마였지만, ‘공동육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를 활용해서 바쁜 와중에도 굉장히 극진하게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제 어머니는 제가 고1 때 돌아가셨습니다. 가족이 전부였던 어머니였고, 사랑이 충만한 어른으로 키워주셨기에나는 늘 부자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부성적, 모성적인 분들이셨어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저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를 학습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초등학교밖에 못 나오셨어요. 맏딸로서 집안일을 도와야 하셨거든요. 일찍이 살림하시느라 꿈을 펼치지 못하셨던 분이셨죠. 짧았지만 평생 안고 갈 만큼의 극진한 사랑을 다 주시고 가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아쉽기는 합니다. 오래 사셨다면 지금도 저와 많은 이야기를 할 텐데 말이죠.

자녀분들은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선생님을 어떤 어머니로 기억할까요?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죠. 내가 여성학을 전공했기에 다른 엄마와 조금 다른 교육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살림만 잘 할 수 있는 여자는 아니어서 일을 하는 건데, 또 일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데 내가 이렇게 일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불행하다면 그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할 수있는 한 최선을 다했어요. 그렇게 나도 아이들도 최선을 다해 성장했죠.

요즘은 대부분이 맞벌이가정인데, 현실적으로 살림은 이제 여성들만의 역할은아닌 듯합니다.

공동살림이어야 하죠. 한국사회는 장시간 노동 체계라서 역할 분담이 힘들어요. 분담을 할 수가 없는 구조죠. 사회구조가 여유를 주지 않으니까요. 사회적인 변화가 필요하겠죠. 단순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힘들어요. 사회 전체의 문제죠. 그리고 아이를 키워 본 여자들은 알 겁니다. 힘들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을 함께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 있는데, 남자들은 거기서 배제됩니다. 일하는여성도 마찬가지고요. 육아를 하면서 이룰 수 있는 ‘인간적 성숙’이라는 측면에서 공유할 기회가 적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이른바 몸과 마음이 병든 사회입니다. 짧은 시간에 문명이 발전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질병들을 안고 있습니다. 문명과 자연의 화해가 필요한 시대에 잠시 멈춰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저는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일이너무 많아서 몇 년 아팠었는데, 약으로 버티다가 어느 순간 안 되겠다는 생각이들더군요. 훨씬 더 전에라도 그만둘 수 있었는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죠.
내 삶의 태도만 변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에요. 내 태도가 바뀌어도 사회구조는변화되지 않거든요.

누구나 잘 살고 싶은 꿈만으로는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킬 수 없을까요?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걸까요?

잘사는 모습은 제 편견일 수 있지만 나 자신이 평화로워야 하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처럼 심신을 잘 닦아야 하고, 집이 평화로워야 하며 그리고 내가속해 있는 나라가 편해야 나도 편한 것 아닐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공동체죠.공동체를 우선한다는 것은 사회나 국가처럼 가장 상층 단위만을 생각하는 집단주의와는 다릅니다. 개인과 전체가 상호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살림의 조직이 바로 공동체입니다. 그 속에서 개인은 자유와 평등을, 전체는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죠.

선생님은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한평생 살면서 나는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유익한 사람이 될 것인가를 놓치면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불교에서는 ‘성불제중’이라고 합니다. 성불과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같이 갑니다. 저는 저 스스로 성찰하고 제가 언제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를 생각해요.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와 같이 뭔가 나누고 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지 않을까요? 저는 문화답사를 참 좋아해요. 답사를 통해 마을을 찾아내고 문화를 찾아내고 여행할 때, 사람들과 그 기쁨을 공유할 때참 보람을 느끼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걸 타인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최근 경험을 하나 이야기하면, 이번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800개의 주문이들어왔어요. 액수는 크지 않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토종을 찾아 먹는다는것이 참으로 기쁘고 보람됐어요. 이런 마을문화나 생명을 살리는 문화, 생태마을과 도시의 활발한 교류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
문화를 통해 생명살림의 기쁨을 알아간다면 저로서는 더 없이 행복하겠지요.

한바탕 요란한 소나기가 지나갑니다. 이미 지나간 빗물들에 대해서는 소식을 묻지않기로 합니다. 그저 우리가 만났다는 것과 뜨거운 여름 한철, 어느 언저리를 함께견뎌냈음을 문득 떠올릴 순간이 오겠지요.
저는 저 스스로 성찰하고 제가 언제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를 생각해요.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와 같이 뭔가 나누고 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지 않을까요? 저는 문화답사를 참 좋아해요. 답사를 통해 마을을 찾아내고 문화를 찾아내고 여행할 때, 사람들과 그 기쁨을 공유할 때 참 보람을 느끼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걸 타인과 나눌수 있으니까요.

신채원 | 미디어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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