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채원

동학은 본래의 배움 …동학은 심보로 키우는 것

– 건달 할배에게 동학의 길을 묻다

따뜻한 인터뷰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세상의 모든 별들이 나를 위해 빛난다거나, 온 우주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기 위해 태어나 자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혼자라고,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느꼈던 어제도 하늘과땅과 바람과 강물은 나를 위해 반짝이며 흘러왔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를 지켜준 덕에 나는 이렇게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출렁거릴 수 있습니다.새해를 맞이해 분주하고 들뜬 마음으로 인터뷰를 위해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을 만났다. 선생의 새해 첫 스케쥴은 1월 1일 오전10시 KBS 특별기획생방송 “청년만세”였다. 개벽신문에서는 방송출연 다음 날인 1월 2일에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가벼운 대화로 시작된 인터뷰는 식사자리까지 이어져 4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팔순을 넘긴 노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열정적인 모습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신채원 : 선생님 반갑습니다.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어제 생방송 잘 봤습니다. 2014년 1월에 한겨레 인터뷰를 시작으로 79세에 세상에 이름을 알리셨는데요, 젊은이들에게 그야말로 “먹히는” 내용의 인터뷰였습니다. 어제 방송도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내용이던데요.채현국 : 이런 늙은이를 만나러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어제 방송엘 사실은 안나가려고했어요. 조정래랑 나를 대담을 붙인다기에 안 나가겠다고 하다가 날 불러낸 사람이 잘릴까봐 나갔어요. 조정래라는 소설가가 인기가 많은 건 나도 아는데, 나는 그런 자리가 아주 불편해요.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방송을 다 볼 텐데, 조정래와 내가 대담을 한 다는 것을 그저께 밤에서야 알았어요. 그러면 안 돼요. 내가 한 말을 조정래가 한 말로 퍼져나갈 거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 거란 걸 알면서 할 수가 없었어요. 대신 따로 새해 인사를 하는 조건으로 출연했지요.

신채원 : 그래도 방송을 무사히 마치셔서 다행입니다. 선생님의 강연을 몇 번 들은 적이 있고, 또 알려져 있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 강연 하실 때마다 동학에 관한 이야기를 늘 하시던데, 선생님과 동학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채현국 : 어제도 그렇습디다. 아, 글쎄 동학 이야기를 하지 말라잖소. 사실은 생방송이라고 해서 그 점을 노렸습니다. 손을 못 댈 거라는 걸 아니까요. PD양반이 마음 좀 졸였을 겁니다. 기자양반도 배운 사람이니 들어두세요. 지식인이 속으면 범죄입니다. 속인 사람뿐이 아니고 속은 사람도 공범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음에 담는 이야기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꼭 심각해야만 합니까? 너절한 감동 속에서도 사는 삶이 있는 겁니다. 동학은 어린이, 약한 사람, 모자란 사람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말에서 출발합니다. 그건 정말 너절한 일상인 듯 보이지만 그 일상 속에서 모든 인간의 가능성을 하늘님으로 모시는 건데, 그래야지. 그런 게 감동이지. 

저는 어리석어서 젊은 날엔 동학 공부를 안했습니다. 천도교라는 종교의 선입견에 마음의 문을 닫았었거든요. 삼십 줄이 넘어서야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보배를 모르고 철학과 다녔다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그걸 못 알아채다니.순교의 의미를 떠나서 ‘깨우침’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깨우침의 과정들을 그때서야 생각하게 되었어요. 수운 선생, 해월 선생이 그 중심에 서 계셔서 더 마음이 쓰이지만 그 수많은 깨우친 사람들, 그러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비로소 생각하게 된 겁니다.내 고향사람들은 상당수가 동학하신 분들입니다. 동학을 하신 분들 중에 양반 성씨는 입만 안 열면 살려줬다더군요. 양반 성씨들은 동학의 디귿 도 안 꺼냈다고 해요. 그래서 그 기록이 거의 없어요. 경상도 일대에 희생자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신채원 : 그러고 보니 저도 궁금했습니다. 동학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전라도와 호남지역만 알려진 경향도 있습니다. 수운선생님께서 경주에서 창도를 하셨는데도 말이죠.

채현국 : 그런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해야 할 겁니다. 내 고향에서 동학 하셨다는 분들이 마을마다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고 전해져요. 전라도 전씨들이 오히려 경상도로 도망을 왔다지요. 최시형 선생도 경상도에서 못 견뎌서 강원도로, 전라도로 도망가잖아요. 여기서 지배세력들이란 무언가를 분리시키는 것에 재주가 밝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실들은 세월이 흐른다고 변하지 않아요. 지배하던 세력들은 늘 지배만 합니다. 세월이 흘러 바뀐 것 같죠? 수천 년이 흘렀어도 똑같아요.

신채원 : 120년 전에 동학을 공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분들은 깨어있는 분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식민지와 6.25 전쟁도 겪으시고, 격변하는 현대사를 지켜보셨을 텐데요, 그 안에서의 동학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채현국 : 내 고향이 팔공산 밑입니다. 동학군이 박살난 대구 근처에서는 동학을 입에도 안올렸습니다. 역적으로 몰리니까요. 나는 우리 집이 동학을 하는 집인 줄 몰랐거든요. 나이 삼십을 먹도록 그게 동학인지 몰랐어요. 물 떠놓고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게 그냥 미신인 줄 알았어요. 우리 할매는 왜, 엄마는 왜 저런 걸 할까?내 나이 열여섯에 아버지가 개벽사를 문화극장으로 만들어 개봉관을 만들어주는걸 봤는데도 우리 집이 동학을 해서가 아니고 아버지가 하고 싶어서 해주는 줄 알았어요.천도교에서 문화극장을 해서 돈을 좀 벌었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없는 돈에 문화극장을 사서 천도교에 권리를 넘겼거든요. 개벽사를 기념관으로 남겨 뒀어야했어요. 아쉽네요.

신채원 : 선생님의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부모님께서 실천하는 동학의 삶을 보여주셨네요.

채현국 : 내가 내 입으로 아버지 이야길 하면 자랑밖에 더 하겠소? 내 아버지는 동학으로 깨우친 분입니다. 그 모든 일을 그냥 하지, ‘동학’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분이었어요. 제 생각엔 아마 그 시절에 경상도 대부분의 집안에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물 떠놓고 비는 것과 그걸 끝까지 동학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 것. 
동학이 동학이라는 그 말은 안 썼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였습니다. 나는 그것이 동학인줄도 몰랐어요. 내 이웃들이 하늘이 내려다본다고 하고 못할 짓을 하지 않는 것이 동학이라고 말하는 걸요. ‘이 놈아, 죄 받는다.’ 이게 동학의 소리입니다. 그 말이 동학인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신채원 : 동학은 유일한 우리나라의 철학입니다. 철학을 공부하셨는데, 철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를 키워주는지요? ‘동학’이라는 철학이 절실한 시대가 오지 않았나싶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채현국 : 그럼요. 필요한 정도가 아니고 동학은 우리들이 오래 공들여 쌓아온 우리들의 정신과 마음을 모아들인 정화입니다. 동학은 언제나 절실했습니다. 언제나 힘이 되었습니다. 수운 선생님이 창도를 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동학은 늘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1894년에 한번 크게 피어났다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져왔어요. 3.1운동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겪었던 그 많은 고난을 통해 점점 이루어져가는 겁니다. 해방, 6.25라는 이름의 동족상잔을 겪고 그 안에서 살아남지 않았습니까. 민족끼리 때려죽이면서도 이승만을 내쫓을 줄 알고, 독재를 만났어도 박정희를 쓰러뜨리고 광주, 제주를 겪으며 동학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었어요. 만약 지금 통일이 된다면 그때도 동학이 큰 힘을 쓸 겁니다.

신채원 :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학생들이 “할배”라고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탄광사업을 정리하고 학교를 인수하셨는데, 교육에 뜻을 두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채현국 : 탄광쟁이가 학교를 세웠다? 제가 학교를 그럴싸한 뜻으로 세웠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 알려져 있어요. 기자양반, 이거 바로 잡고 갑시다. 우리 아버지 친구 중에 이종률 선생이라고 있어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를 결성한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분인데, 그 일로 그분은 박정희 정권 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분을 교장으로 취임하도록 하려고 학교를 인수한 겁니다. 세월이 흐르고 경남이나 부산지역에 오늘날 사회적으로 진정성 있는 발언을 한 사람들은 다 이종률 선생 제자들이더군요. 그분을 교장 하시게 하려고 학교를 해 드린 거지 나는 학교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아요. 멀쩡히 나가서 일하고 돈 벌수 있는데 공부를 하면서 속이게 되거든요. 학교라는 체제는 국가의 유지책이지 진리탐구를 한다느니, 인격도야라느니, 인간의 가능성을 높인다느니 다 속이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은 합니다. 강물이 흘러가는 데 어떡합니까? 아이들과 사는 것은 좋지요. 정부의 권력에 아이를 속이고 부모를 속이고 이런 게 슬픈 거지요. 어쨌든 아이들을 위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긴 합니다.

신채원 : 말씀을 듣고 보니 ‘행동하는 지성’ 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요. 선생님께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추구하시는지요?

채현국 : 저도 그 말을 쓰고 삽니다만, 누가 자본주의의 장점을 모르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모르겠습니까. 어쩌다 보니 길들여져서 그 길로 매진하는 거죠. 달리는 기차 속에 앉아 있지 않습니까. 사회주의국가들이 간판을 내걸고 기차는 자본주의 쪽으로만 달리고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가치’라는 말은 위험하고. ‘옳다 그르다는 기준이 없다’라는 말 뿐입니다. 만약 기준이 있으려면 인류의 총체적 합의만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신채원 :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채현국 : 모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할 때, 그것은 어느 시대에 가도 합의를 이룰 겁니다. 세상을 하느님이 만들었다, 부처님이 만들었다 말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예수 믿습니까, 기독교 믿습니까?’ 세상에 옳다 그르다가 없습니다. 제발 옳다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버립시다. 윤리니 도덕이니 모두 지배자들의 훈련에 불과합니다.

신채원 : 일부 깨어있는 지식인들은 기독교가 2000년을 지배해오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기술주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학자들은 티벳 불교를 통해, 영국의 과학자들은 태극을 통해 심신훈련을 하기도 합니다. 동학적 관점으로 풀어낸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채현국 : 나도 일본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요. 동학에서 ‘아이를 하늘님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깨우쳐준 겁니다. 나에게 의존하는 힘없는 그 작은 존재가 ‘하늘님’이라는데, 그것은 우리가 미처 모르고 살다가 어느 순간 일깨워 준 것이죠.

신채원 :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이력은 많은 매체에 소개도 되고 알려진 바가 많은데, 선생님의 젊은 시절에 깨달음을 줬던 인생의 화두는 무엇입니까?채현국 : 제가 53년에 연탄공장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연탄공장에서 말이죠. 형님이 그해 7월에 자살합니다. 스물일곱의 청년이었죠. 사람의 삶이란 참 아이러니한 것이,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잘 사는 집 아들입니다. 그런데, 형님이 자살하고 가정이 깨지고 서울대학교와 중앙방송국엘 다닌 제가 탄광으로 갈 정도면 갈 데까지 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형님의 자살 덕에 조금은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내고 살았습니다. 거지와 부자를 오가며 그렇게 말입니다. 조금 덜 비겁하게, 조금 덜 치사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신채원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이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한 평생을 바쳤던 분들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사견으로, 선생님께서 그분들과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선생님을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채현국 : 내가 하는 이 말들이 결국은 농약이 될 염려가 많습니다. 내가 안도현 시인을 참 좋아하는데, 그분 때문에 내가 살아온 삶이 탄로가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내가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이제 곧 죽지 싶거든. 이제 맞아 죽을 자리를 찾는 겁니다. 나는 살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우리 마누라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조금 억울하게 죽는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세상이 바뀔 겁니다. 그래서 작심하고 헛소리를 자꾸 합니다. 헌데, 진정성이 자꾸 사라집니다. 과하게 고맙고 존경한다는 말이 제겐 익숙지 않거든요. 내가 나를 인터뷰하러 오는 사람에게 늘 하는 말인데, 기자양반도 절대로 나를 그럴싸한 인간으로 쓰지 마소.

신채원 : 민중의 선택은 늘 올바른 쪽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강연을 통해서나 여러 매체를 통해 하셨던 말씀들이 젊은 청년들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나쁜 짓을 많이 했다, 못된 짓을 많이 했다 하시지만 오히려 그런 말씀들을 통해 긍정적인 모습을 꿈꿀 수 있게 하지 않습니까?

채현국 : 아는 것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의 위험성을 압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물론, 어떻게 사람의 스토리가 소설보다 힘이 있지, 힘이 없겠소. 아무리 내가 나쁜 짓을 했다케도 현장을 안 본 사람은 나쁜 짓의 현장감은 없고 나쁜 짓을 했다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만 있으니. 이게 벌써 거짓말이거든요. 사기고요.

신채원 : 지금 이 사회는 아픔을 아픔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인식하기에 젊은이들이 수동적으로 보이실 수도 있겠다 싶은데요, 이 험난한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채현국 : 청년 분들은 잘 봐 둬야합니다. 식민지와 분단을 해결하지 못한 그 세대가 나이 칠십을 넘기고 있습니다. 젊을 때도 그 꼴, 그 모양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절망적일 때 비로소 사람들에겐 생각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우리는 절망 속에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라는 기회를 얻습니다.

신채원 :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부작용도 작용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우리가 동학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그 안에 다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채현국 : 누에는 뱃속에 비단 실이 있어도 벌레에 지나지 않는데, 인간은 뱃속에 똥 말고 뭐가 있습니까. 진정한 존재의 삶은 무엇입니까. 사기꾼도 쓸모가 있어요. 유행가를 생각해 봅시다. 유행가는 돈과 권력에 덜 환장하게 하죠. 이게 세상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뭐합니까. 돈 잘 벌고 출세하는 것이란 앞잡이가 되는 것 밖에 더 있습니까? 이 사회는 지식인이 무언가에 앞잡이가 된 사회입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배운 길로 가지 마십시오.

신채원 : 지금 이 시대에 동학이 의미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일까요?

채현국 : 개벽신문이 동학 이야기하는 신문인데, 공연히 동학이라는 말로 제한시키고 싶지 않아요. 수운선생님이나 해월선생님은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한 동학을 펼치신 분들입니다.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은 동학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뜻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동학의 ‘東’자는 ‘우리 본래의 배움’으로 ‘동’자를 쓴 겁니다. 수운선생이 맹자를 안 읽었을 리가 없어요. 떨어지긴 했지만 과거시험도 치셨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운선생이 과거에만 관심이 있었으면 동학을 깨우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럼 다른 지식인들은 몰랐을까요. 그랬을지 몰라요. 과거에만 미쳐서 정신이 없었을 거거든요.도덕이고 윤리라는 말을 쓰기 싫지만, 인간은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이 됩니다. 안 가르치면 엉망이 되거든요. 무엇이 옳다 그르다, 이것을 안다, 모른다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동학조차도 동학, 동학 부르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동학은 하는 겁니다.

신채원 :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동학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동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채현국 :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고 정치권력을 쥐는 자들은 민중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착취했고, 그때마다 동학이 우리를 함께 살줄 알게 했습니다. 지금도 대화 내내 습관처럼 두 손을 꼭 맞잡고 계시던 채현국 선생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진정으로 함께 살 줄 아는 것이 동학입니다. 동학은 지식이 아니고 심보로 키우는 겁니다.내 옆에서 누군가가 고통 받고 있다면 같이 맞아주진 못해도 여기 아픈 사람이 있다고 소리는 질러줄 수 있는 거잖아요. 
결국 동학적 사고가 본래의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동학이 없어지지 않는 걸 보니 젊은 사람들이 위대한 사상이자 학문으로 공부할 때가 왔습니다. 이 시대는 그럴 만한 시대입니다. 아는 것이 인격은 아니지만 동학은 좀 알아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동학은 우리본래의 배움입니다. 본래의 사람을 섬기고 화합해서 사는 모습, 그게 동학입니다. 할배의 꿈 인터뷰를 앞두고 할배를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처음 인사를 드리고 돌아온 말은, “반가워요. 어디선가 나를 만난 적이 있더라도 나는 기억을 못 할 겁니다. 

미리 미안합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걸려 온 전화에도 할배는 그 말부터 찾는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겸손의 끝을 보여줄 줄 알기란 쉽지 않다. 모든 씨앗은 썩어야 싹이 튼다고 말하는 할배의 80년 인생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끝으로, 할배가 새해 첫날 방송을 통해 청년들에게 남긴 새해 인사를 전한다.이 나이에 나를 귀여워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삼라만상 우주에 모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나 혹은 있지 아니한 것들까지도 빛이 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부자로 6번, 거지로 7번을 살아봤습니다. 이제 1번의 부자가 될 기회가 남아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권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비폭력저항을 우리 민족이 1894년, 120년 전에 학살당하며 동학을 통해 실행했습니다. 우리는 4년마다 혁명을 하지 않습니까. 올해 투표를 꼭 하십시오.

그 외의 이야기들신채원 : 선생님 어제 방송에서 젊은 시절 사진들을 몇 장 볼 수 있었는데요, 참 잘생기셨어요.

채현국 : 내가 배우지망생이었어요. 젊은 시절 사진을 우리 마누라가 어디서 찾았는지 몰라요. 그 사진들 보면 사진마다 제일 쪼마난 놈이 나에요. 난 내가 좀 예쁘게 생겼었던 게 초등학교 때 끝난 줄 알았어요. 전혀 몰랐어요. 나는 참 독하게 생겼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KBS공채 1기예요. 연극을 했었거든요. 배우 이순재랑 내가 동기입니다. 학교는 2년 선배고요. 이순재야 말로 예뻤지요. 나는 한 평생을 독한 줄만 알았어요. 키도 작고 몸도 약해서 늘 기운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나보다 크면 그냥 대들고 봤어요.

신채원 : 방송에서 빵모자에 멜빵바지를 입으셨고 굉장히 멋지게 하고 나오셨던데 입었던 의상은 마음에 드시는지요?

채현국 : 내가 배우지망생이라고 하지 않았소. 나는 원래 그렇게 입는 걸 좋아합니다. 모자도 삐뚤게 쓰는 것 좋아하고요. 멜빵은 배가 나와서 매일 그러고 다녔어요. 어제 방송에 전담 스타일리스트가 왔더군요. 한복을 입으려다가 기왕 방송에 나가는 거 시키는 대로 하고 나갔어요.

신채원 : 건달 할배, 거리의 철학자, 현대판 임꺽정 등등 선생님을 부르는 별명이 많습니다.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채현국 : 나? 건달이지. 학생들이 나를 할배라고 불러. 나야 건달로 살았으니 건달이고. 이제 할배가 됐으니 건달 할배지.

가치관에 대하여채현국 : 기자양반, 아까 가치관에 대해 물었소? 동학꾼들의 특징을 가만 보면 원칙주의자가 아니더라고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옳다 그르다가 없어요. 이다, 아니다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다, 아니다’도 중요치 않아요. 그것들 모두 기록이 사실이 되고, 지식이 사실이 되는 세상 아닙니까.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데에만 마음 쓰는 것, 그것이 즐거움이 되고 그 자체가 능력이 되는 것 이외에는 나에게 가치관이라고 할 것이 없다고 봐요. 내가 그 마음을 지키며 찰나 찰나를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과연 이걸 가치라고 해야 할지요.지배세력이 만들어 낸 이상하고 이상한 것에 대하여 

예수와 석가모니를 생각해봅시다. 예수가 인심 좋은 목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때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돌에 맞을 일이었어요. 그 목수가 아니었다면 무슨 수로 살아남습니까? 그런데 예수는 그 목수가 아버지가 아닌 것을 알고 가출을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못됐습니까. 그러다 곰곰이 생각을 했겠죠. 구세주가 되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석가모니도 마찬가집니다. 왕자라고요? 족장이죠. 석가모니가 어떻게 태어나 자랐습니까. 마야부인이 아이를 낳으러 친정으로 가다가 길에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까. 옆구리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제왕절개로 태어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입니다. 석가모니가 썩은 돼지고기를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로 봐서 미화된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그렇게 태어나서 일주일 만에 어머니를 잃죠. 살모사처럼 어머니를 죽게 하고 태어난 석가모니는 이모 손에 자라는데, 철들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부처님이 될 수밖에 없었겠죠.기독교는 로마의 통치 수단으로 만들어졌고, 불교도 아쇼카 왕 시절의 크샤트리아가 브라만을 지배하려고 만든 겁니다.기독교와 불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현실권력이 만들었어요. 그 신성함을 이용했죠. 사상만 움켜쥐면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까요.자, 왜 같은 이야기도 이렇게 하면 신성모독이 됩니까? 내 이야기는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라는 겁니다.동학에서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나는 동학을 자꾸 ‘동학이라는 말’ 강조하지 말고 실천의 의미로 생각한다면 전 세계가 동의하고 합의할 요소들이 많아요. 동학사상이라든지, 그런 말에 구애받지 말았으면 합니다. 

채현국 선생1935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KBS PD로 입사.부친과 함께 흥국탄광 운영(부친 채기엽, 일제치하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정적 도움)1973년 흥국탄광과 계열사 정리, 1,300명 사원에게 나눠주고 교육사업 및 민주화운동가 후원.현재 효암학원 사학재단 이사장..

취재·글 / 신 채 원 | 미디어세림 대표·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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