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평화운동 …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믿는 것
이름이 생겼습니다. 관계는 누구의 무엇으로 또한번 태어나는 거라서 나는 그렇게 당신에게로 가 꽃이 되었습니다. 당신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나는 당신에게 무엇으로 피어나야 할까요. 네가 너로 충분하다는 말이 툭, 와 닿습니다. 신은 창조로 세상의 문을 열고, 사람은 사랑으로 자기 운명의 문을 열어가니 ‘나’라는 이름의 꽃이 피어나는 자리마다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신채원 :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남녘교회의 목사님으로 알려져 있는데, 임남규, 임의진, 김민해 목사님에 이어 4대 담임목사로 계시더군요. 작고 아름다운 교회라고 들었습니다. 생명평화결사 활동으로 생명평화운동을 펼치고 계신데, 최근에는 생명평화 희망워크숍 행사를 하셨다고요
전진택 : 반갑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인터뷰를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부풀려질까봐 우려가 됩니다. 저는 예똘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예수님의 똘마니라고요. 생평평화결사라는 단체에서 실무책임자로 몇 년 지냈고 그 이전에는 탁발순례를 함께했어요. 가장 최근에 생명평화 희망워크숍이 있었고요, 4월에 원불교 100년 국제학술대회와 “생명평화 활동가 한마당”을 함께 하게 되어서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신채원 : 생명평화 희망워크숍은 성과가 컸다고 들었습니다.
전진택 : 생명평화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최근 몇 년간 모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모여 봤어요. 그리고 각자의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만들어졌죠. 목표를 정하거나 명쾌한 결론을 주지 않았지만 단계가 만들어진 거죠. 4월에 있을 생명평화 활동가 한마당에서는 영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해요. 가치로서의 생명평화의 이야기는 많이 이루어 졌으나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게 생명평화의 삶인가를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채원 : 생명평화운동을 시작하신 계기는 언제였나요?
전진택 : 저는 함안에서 목회를 정리하고 진안에 들어오고 그 이후의 삶을 살면서 생명평화결사 사무처장을 몇 년 했어요. 2009년 7월부터 영광 생명평화마을에 2년 있으면서 일을 했어요. 황대건 선생님이 만들던 생명평화결사 정신을 실현하는 마을일을 했고요.
신채원 : 30년 전에 생명평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생명평화가 새로운 운동의 화두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진택 : 한마디로, 나와 분리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이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존의 사고방식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든 부분에서 이원론적인 시선이 많아요. 나와 타자를 분리시키는 거죠. 지금 우리가 편싸움을 하는 것은 나와 나 아닌 것으로 나누잖아요. 이것은 끊임없는 악순환이에요.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나와 이웃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순간, 이웃이 곧 나기 때문에 함부로 못하는 것이 생겨요. ‘저 것’이 ‘나’니까요.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인류의식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점점 많아질 거라는 것도 지켜볼만 할 것이고요.신채원 : 세대가 바뀌는 주기를 30년으로 볼 때, 지금의 젊은이들과는 세대가 다른데 생명운동, 전환이 갖는 미래비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진택 :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가치의 전환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와 나 아닌 것들을 나눠서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이렇게 생각하고 여전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정말 나와 너는 다른가?’ 이렇게 묻고 따져보면 나와 너는 다를 수 있지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객관적 진리로, 모든 것은 연결됩니다.
신채원 : 목사님께서 실천하시는 생명평화운동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시위 현장에는 안 가신다고 들었는데요.
전진택 : 어느 날부터 내가 못하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시위현장에 가서 누구 물러가라고 할 수 없어요. 나는 그걸 못해요. 그렇게 외치는 것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아요. 그렇게 된 것은 강정에서부터 였어요. 이후로 어떤 시위 현장에도 안가죠. 물론 힘들고 외롭게 투쟁하는 분들이 있어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은 하지만 누구를 향해 물러가라고 외치는 것이 힘듭니다.
신채원 :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뜻을 모으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죠. 전진택 :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고, 기독교식으로 말한다면 예수가 목숨을 버려서 구원하고 싶었던, 기꺼이 목숨을 버릴 만큼 소중한, 동학으로 말한다면 모두가 한울님인데 모든 것이 정말 그래요. 내가 깨어있고, 깨어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은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을까요?
신채원 : 목사님은 어떨 때 행복한가요?
전진택 : 저는 지금 늘 행복해요. 불만도 없고요. 불만이 없는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영성이라고 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의 신비, 여기서 우리가 깨어있다면 매 순간 순간이 말할 수 없는 고마움으로 다가오는 것 아닐까요? 저는 저 개인에 있어 내게 오는 모든 일이 좋은 일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는 편인데,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힘든 일이 벌어지기도 해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나에겐 좋은 일 외에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하고 삽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가면서 우리가 무엇을 건져낼까 생각하는 거예요. 남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면 나는 꿈꾸다 죽을 거라고 말합니다. 내가 꾸는 꿈을 아무도 못 봐도 괜찮아요. 그러나 나는 꿈꾸다 죽을 겁니다. 나는 그러고 싶거든요. 누군가 비관적으로 보인다면 좋은 일일 거라고 말해줘요. 예수가 말합니다. ‘하늘에 새를 봐라 들에 핀 들꽃을 봐라 … 하물며 너희는 더 귀한데 어찌 안 먹여 살리겠느냐.’라고요.
신채원 : 목사님 인생에 영향을 주신 분이 있다면 어떤 분이 있을까요? 전진택 : 내가 내 삶을 돌아보면 성인이 될 때까지 선생님으로 모실만한 분을 만난 적이 없는데, 어느 해에 이현주 목사님을 뵈었어요. 처음 뵙게 된 자리였어요. 신학대 시절에 목사님께서 쓰신 글을 많이 봤죠. 내가 신학대를 들어갈 때 신심이 깊어서가 아니고 신이 정말 계신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는데, 그러다 ‘기다릴 수만 있다면 끝내 오지 않아도 좋겠다’고 쓰신 글을 봤어요. 이후로 인연은 없었는데, 풍경소리 독자모임에서 이현주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2박 3일을 보내면서 지나온 세월이 단편처럼 떠올랐어요. 수없이 많은 단편들이 구슬이라면 촘촘히 이어져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사는 모든 힘겨웠던 시간들을 깨끗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신채원 : 왜 신학을 하셨고, 왜 목사님이 되셨나요?
전진택 : 고2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떠나 본 적이 없어요. 중학교 때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고, 그때 온 가족이 절절하게 신앙에 매달렸었죠. 어머니께서 암을 이겨내시는 것을 보면서 온 가족이 신앙에 감사하고 살다가 고2때 어머니의 암이 재발했어요. 수술이 잘 되었지만 재발했어요. 어머니께서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재발이 되었을 때는 이미 전신으로 퍼져서 늦었을 때였어요. 결국 돌아가셨죠. 돌아가시고 나니 기존에 갖고 있던 ‘믿으면 된다’ 라는 신앙이 깨졌죠. 이미 기독교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어서 어머니가 가장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돌아가시고 나니, 그동안 교회에서 이야기한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거죠. 그런 것들로부터 의심, 고민이 시작되니 신이 정말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 의문을 풀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학대를 갔어요. 대부분은 신앙이 깊어서 신학을 하지만 저는 신이 정말 있는지, 신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신론자가 되어 가고 있었어요. 그때도 저는 99%는 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99:1이어도 1%의 의심이 있으면 올인을 못해요. ‘백척간두 진일보’라고 하죠. 천 길 낭떠러지 앞에서 한발을 더 내딛는 게 신앙입니다. 한발을 내딛으면 100%가 되는 거예요. 그 믿음이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한 발을 못 딛습니다. 절대로요. 1%라도 의심이 있으면요. 나의 20대는 하느님은 정말 있는가가 화두였어요.
신채원 : 목사님의 20대는 행복하셨나요?
전진택 : 학생운동도 맹렬히 했고, 누가 나에게 왜 이러고 있냐? 물어보면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내 안에 신앙적으로 확신은 없었으나 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신이 있다면 어디에 계시냐’고 질문을 하면 정리가 되었어요. 가장 낮은 데 있다고요. 고통 받는 하나님으로 정리했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신채원 : 그래서, 신은 계시던가요?전진택 : 네. 20대 말, 30대 초에 정리했어요. 10년간 끊임없이 물었는데, 이정도
물었으면 해결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기도원에 들어갑니다. 어느 순간 1%가 지워지더군요. 아 그분이 계시구나. 깨끗하게 믿어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마음이 돌아갑니다. 1%의 의심이 사라졌어요. 저에게 어머니는 신앙의 99%를 유지하는 힘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경험이 나에게도 중요한 경험이었는데 어머니 스스로 암이 재발했을 때 못 견디셨어요. 그러다 어느 시점에 어머니께서 그걸 받아들이셨어요.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평화롭게 가셨어요. 어머니는 남은 시간 동안 어머니 마음에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야 할 사람과 고맙다고 이야기해야 할 사람을 불러달라고 하셔서 그 말을 하고 돌아가셨죠. 내 평생 어머니의 그렇게 평화로운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숨을 거두셨을 때의 그 얼굴이.
99%의 신앙을 가지고 평신도로 산다는 건 가능해요. 하지만 목회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 믿음을 극복하고 목회를 할 수 있었죠. 위험한 이야기지만, 나 스스로 내가 가진 신심이나 이런 것들이 전통적 기독교의 틀에서 볼 때 신앙일까?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뭐랄까 내가 생명평화결사 일을 하면서 확연하게 받아들여졌는데 나와 분리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끗하게 받아들였어요. 나는 밭에 풀을 베면서도 미안하다 말해요. 풀 한포기 쳐 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그게 ‘나’거든요.
신채원 : 늘 그렇게 착한 생각만 하고 사시나요?
전진택 : 그런 건 아니죠. 나에게 오는 것뿐이죠. ‘교회동네’에서 하는 말 있죠. ‘이웃을 사랑하라.’ 예전엔 그게 참 쉽지 않은 화두였어요. 왜냐면 이웃이 내가 아니잖아요. 근데 나 아닌 이웃을 사랑하는 게 애를 써도 안 되더라고요, 어느날 그 이웃이 나라는 말로 읽히더라고요. 그걸 알아차리라는 거였어요.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가 없고, 사람뿐만 아니고 모든 생명이 나와 분리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게 핵심이구나, 동학으로 말하면 삼경(三敬) 즉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이라 하여 일체만물을 한울님으로 공경하는 것 말이죠. 나는 그것이 시대적으로 지금의 생태적 지평들이 사람들의 의식에서 관점이 넓어지면서 풀 한포기도 예사롭지 않게 보는 시선들이 번져있거든요.
신채원 : 생명평화라는 관점으로 볼 때 오늘날의 동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습니까?
전진택 : 저는 동학을 잘 모르지만 제가 듣기로 수운이 동학을 펼치고 실패할 거라는 말을 스스로 하시고 2주갑 이야기를 했다고 하죠. 그 2주갑이 지났잖아요. 끝난 것 같지만 그 때가 되면 되살아날 거라고 해요.
신채원 : 3년 전 120주년을 바라보면서 보은민회, 들살이를 보는데 머리속에 그려보았습니다. 아,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처럼 120년 전에 새로운 희망을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죽을 걸 알면서 왔거든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착한 사람들이었어요.
전진택 : 그 당시에 그 많은 사람들이 거길 왔다는 것은 지금도 가슴이 아프죠. 오늘날의 보은취회를 보면 동학이 이제 더 이상은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분명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동학을 깊이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신채원 : 종교로서의 동학이 아니고 내용으로서의 동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새로운 문명일 수 있습니다.
전진택 : 이 시대를 넘어 열려질 새로운 세상과 딱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있죠. 천도교는 교세가 기울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동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재미난 일이에요. 일상의 삶으로 퍼져가는 것들로서 동학이 수운이 이야기했던 2주갑 이후에 벌어지는 세상은 종교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가치가 달라진 세상으로 펼쳐질 겁니다. 알아차린 사람들이 수없이 많아지니까요. 지금이 그런 시절이라고 봅니다.
신채원 : 목회활동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전진택 : 함안에서 목회활동 했던 교회는 학교 안에 있었어요. 9개 학교의 교사들이 주로 교회를 이루는 데, 재단의 교회라고 하는 일들은, 이해관계들이 얽혀있어요. 신도들을 괴롭히는 것 같은 이야기만 했어요. 앉아있기만 한다고 신앙이 아니다. 하고요. 당시 함안은 기독교가 자리 잡은 지역이 아니었어요.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은 이전의 교회생활을 모르던 사람이었거든요. 교회가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서부경남은 기독교인들이 섬보다도 적은 동네예요. 살면서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6년쯤 되었을 때 너무 힘들어서 한 달 만 쉬겠다고 하고 4주간 와서 설교할 목사 섭외를 해 놓고 쉬는데, 그 한 달의 시간이 내 삶을 바꿨죠. 내 삶의 변곡점들이 있는데, 나 스스로 바뀌고 보니 별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내 곁에서 사람들이 하던 말들이 있었고 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누구도 누구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죠.
신채원 : 이후의 목회활동은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전진택 : 돌아왔을 때 설교 내용이 달라져 있더군요. 고맙다는 말만 하게 되었어요. 내 삶속에서 내가 건져낸 그것들을 이야기처럼 나누는 설교시간으로 바뀌더군요. 나는 이런 게 행복하다. 나는 내 고백을 하고, 듣는 사람들은 방어기제가 사라지니 공명을 일으키게 되더라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변했어요. 난 내가 알아요.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에요. 그분들은 이 시간에 집에 있는 게 행복할 수 있는데 여기 왔잖아요.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내가 자유롭고 평화로워진 것 같아요.
신채원 : 기독교적 ‘영성’을 경험한 것으로 보아도 될까요?
전진택 : 예수가 원하는 삶이 뭘까요? 낮게, 낮게 사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스승이신 이현주 목사님께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목사님, 나도 모르게 했던 기도가 내 삶을 끌어온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게 맞을 거야, 너도 모르게 한 기도에는 네가 없잖아” 하시더군요. 영성은 풀어서 다르게 이야기하면 내가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 같아요.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정말로 살고 싶은 대로 내 삶을 살게 하는 내면의 힘이 영성이겠죠. 신앙의 힘일 수도 있고 믿음의 표현이 영성일 수 있겠죠.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선하시고 나를 향해 늘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것. 과정에서 벌어지는 힘든 일이 좋은 일 외엔 없는 거더라고요. 결국 나에게 좋은 길로 끌고 가시는 것.
신채원 :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신앙이란, 성찰이란 무엇일까요?
전진택 : 진짜 목회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거죠. ‘네가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너는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네가 뭘 하든 아무 상관없어. 다만, 최소한 그걸 알았으면 해. 그런 널 위해 하느님의 아들이 죽었어. 네가 그렇게 귀한 존재야.’ 그걸 알아차리면 함부로 못살아요. 즐거움은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모여서 함께 즐기면 증폭됩니다. 그게 예배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제가 이끄는 예배입니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나도 귀하고 저 사람도 귀해요.
신채원 : 그런 영성이나 성찰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시대에 희망이란 과연 존재할까요?
전진택 : 이 시대 희망은 결국 모두 알아차릴 거라고 하는 믿음이 아닐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하늘이고 모든 생명,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귀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다툴 수 있을까요? 종교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신채원 : 주로 하는 기도가 있다면 어떤 기도가 있나요?
전진택 : ‘주님 고맙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남녘교회에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그 말을 붙였는데 이후로도 그냥 붙여뒀어요. 나는 그 말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다보면 어느 날 뭐가 고맙지? 생각이 들어 헤아려보니 모든 것이 고맙더라고요. 내가 살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놀라운 신비였어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뭔가를 할 때 나오는 에너지는 둘 중 하나입니다. 두려움과 사랑이죠. 사랑은 좋은 마음으로 즐겁게 하는 거예요. 지나온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구슬이 꿰어지듯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그래, 지난 모든 삶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꼭 필요했던 거구나라고 느껴요.
신채원 : 개인적으로 하느님이 저를 업고 오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두 개의 발자국’ 이야기에서요. 정말 하느님은 저를 업고 오셨을까요?
전진택 :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분과 내가 둘이 아니다. 하나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요. 온 세상이 나와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나는 지금 내가 이 세상에 들어와 살려고 했던 내 나름의 계획을 신뢰하기로 했습니다. 이전에 갈등을 했다면 이제는 판단하는 것으로요. 그 분이 나를 업고 왔다는 말을, 내가 나를 업고 온 걸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신채원 : 동학에서 말하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과 연결되나요?
전진택 : 그게 맞겠지요. 기존의 기독교의 범주에서 보자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시점까지 왔다고 봐요.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했다고 말하죠. 사람이 자기 삶 속에서 창조주 하느님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사람을 만들어서 그것을 알아차리고 내 기도는 내가 꿈꾸는 어떤 것들을 선언하듯 던져버리고 고민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신채원 : 선언이라는 말씀에서 실천의 의미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전진택 : 선언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기도가 아닐까요? ‘사랑하게 하소서’ 가 아닌 ‘나는 사랑입니다’, ‘내가 깨어있겠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당신이 그렇게 만드신 세상이 온전한 것처럼 나도 온전한 것. 내가 만들어낸, 내가 앞으로 만들어갈 모든 것들이 완전한 것. 우리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짜 중요한 기도는 되풀이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종교의 시대가 끝났다고 봅니다. 그 느낌이 나에게 왔어요.
신채원 : 이성적으로 이해는 됩니다만 목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갑니다.
전진택 : 우리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신화적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것들을요. 이른바 종교라는 틀 안에서 교리적으로 복잡한 것들이 많은데 거기서 말하는 진리를 이렇게 보편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데, 그렇게 진정한 무엇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누리게 될 텐데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신채원 : 목회자의 심증으로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전진택 : 여기 시소가 있습니다. 한쪽에 예수가 있고 한쪽에 내가 있어요. 이게 어느 쪽으로 기울까요? 나 쪽으로 기울죠. 예수가 나 때문에 죽었으니까요. 내가 그만큼 귀하다는 것 아닙니까. 하느님의 아들이 나 때문이 죽었어요. 내가 그 목숨보다도 귀한데 그것을 알아차렸으면 된 거죠. 그만큼 내가 귀합니다. 나의 절대적 가치가 증명된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 가치와 상관이 없어요. 상대적 가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해요. 예수사건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어요. 나의 절대적 가치가 확연히 드러난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하다는 겁니다. 내가 가난해도 장애가 있어도 나의 상황과 가치는 절대적 가치를 전혀 훼손하지 않아요. 그 절대적 가치를 깨닫는 순간 나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존귀해집니다. 상황이 나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상황은 단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낼 뿐입니다.
신채원 : 교회에서 교인들과는 어떻게 소통하십니까?
전진택 : 나는 설교라고 생각을 안 합니다. 일상에서 건져낸 고마움을 나눴을 뿐입니다. 교회에 교인들은 할머니들 여덟 분이 전부입니다. 내가 거기서 처음으로 갖은 생각은 할머니들과 일주일에 한번 밥을 한 끼 나누고 헤어지면 좋겠다, 두 번째로 연세가 많이 드신 분이니 한 분, 한 분 가시겠죠. 그럼 정성껏 잘 보내드려야겠다. 예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가장 힘든 길을 걸어갔어요. 내가 죽어서 너를 살릴 수 있다면, 내가 소중하지만 내가 기꺼이 너를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게 예수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요. 아주 명확합니다. 부자가 되었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그런 차원에서 내가 남녘교회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목회를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신채원 : 다시 생명평화운동 이야기로 돌아와서,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생명평화운동의 방향은 무엇인가요? 전진택 : 지금까지 생명평화운동은 주류운동이 되지 못했어요. 지금의 시대에 와서 경제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구체적인 현실사회에 호혜의 경제, 유무상자 등이 실제로 새로운 문명을 열기 위한 좀 더 구체적인 밑그림으로 그려질 필요가 있어요. 기존의 사회운동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스스로 한계들을 잘 알고 있을 거고요. 싸우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해결이 될 거라고 믿지 않아요. 대안도 없고요. 나는 그런 방식이 더 이상 안 통한다는 것이 드러난 건 오래 되었다고 봐요. 이미 새로운 것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신채원 : 그런 관점에서 동학 이야기를 좀 해보면 어떨까요?전진택 : 동학의 교세가 약한 것이 어쩌면 긍정적일 수 있어요. 동학은 사람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모임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동학에서 말하는 ‘한울님’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잖아요. 우리가 그걸 단순하게 받아들여서 저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개벽이라고 하는 것, 알아차림의 확산입니다. 모두가 알아차리는 것. 더 이상 경쟁할 수도 싸울 수도 누구를 욕망에 의해 짓누를 수가 없는 것. 참는 것이 아니고 그리 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 소중하게 대하는 것. 그것을 알아차리는 시대가 오는 것이 개벽이 아닐까요. 이미 시작되었어요.
신채원 : 동학을 공부하는 모임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이어져가고 있나요?
전진택 : 저는 함안에 오래 있었어요. 10여 년 목회활동을 했는데, 이병철 선생님과 인연이 되면서 공부모임에서 해월신사법설을 같이 읽었었어요. 그게 동학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어요. 해월신사법설을 읽어 가는데, 내용이 경전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생활 안에서의 구체적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더군요. 에를 들어, 해월 선생이 어느 집에 갔는데 집주인이 아이를 야단치는 것을 보고 지금 자네가 누구를 그렇게 야단을 치는가? 야단치는 그 아이가 한울님이 아닌가? 하고 말해요. 저는 이렇게 구체적인 생활의 이야기들이 경전의 내용일 수 있을까. 하고 놀라웠어요. 제 마음속에 큰 화두가 되었죠. 우리가 하찮게 보이는 물질을 함부로 보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때 동학에 관심이 많이 생겼죠.
신채원 : 동학의 경전이 지금 이 시대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전진책 : 시기적으로 보면 생태적 삶의 관점이 보편화 되었잖아요. 생태적 삶을 의식적으로 많이 받아들이는 시대가 되었는데, 동학은 상당히 오래전에 만들어졌는데도 지금 이 시대에 너무 잘 맞는 이야기다 싶어서 놀라웠어요.
신채원 : 개벽신문 인터뷰에서 드리는 공식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요?
전진택 : 우리는 세상에 들어올 때 이번 생애에 이런 경험을 하려고 정하고 들어오는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는 편인데, 그래서 어쩌면 나도 그렇고 우리는 수없이 많은 생을 살잖아요. 영혼을 담을 몸이냐, 몸을 입은 영혼이냐. 존재 자체를 말하잖아요.
신채원 :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전진택 : 정답은 없어요. ‘작은 영혼과 해’ 라는 책이 있어요. 이현주 목사님께서 번역하신 이야기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고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저 사람이 나를 돕기 위해 세상에 내려온 천사로 보이더군요. 누가 나를 힘들게 하면 그 이야기의 선상에서 생각해요. 저 사람이 나를 돕기 위해. 나를 제대로 빛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요. 미움과 분노가 내 마음에 있으면 기도가 안 되거든요.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하다가 안되면 정말로 답답해요.
신채원 : 사회운동을 하시면서 느끼는 분노는 어떻게 하시나요?
전진택 : 분노가 있었죠. 지금은 없어요. 생명평화결사 사무처장 시절에 강정에서 한 1년 있었어요. 생명평화결사에서 전국을 돌며 100일 순례를 할 계획이었어요. 전국의 회원을 만나며 순례프로그램 시작을 제주도로 들어갔다가 첫날 저녁에 강정에 갔다가 계획을 바꿨어요. 강정마을을 보고요. 이야기를 듣다가 저녁에 100일간의 계획을 접고 강정에서 100일 순례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때 머물렀던 것은 강정마을 사람들이 5년 동안의 싸움을 하다가 동력이 다 떨어져서 이 싸움을 접으려던 때였어요.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어서요. 우리가 중재의 역할을 좀 할까 했었지만 강정마을의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알려져야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 머물기 시작하면서 매주 주말마다 뭍에 있는 사람을 불렀어요. 주말마다 문화프로그램을 돌렸어요. 즐겁고 행복했어요.
신채원 : 100배 절에 대한 이야기가 유명하더군요. 의미는 무엇인가요?
전진택 : 우린 매일 아침 100배 절을 했거든요. 생명평화 100배 절명상을 만든게 있어요. 탁발순례하면서 만들어졌죠. 생명평화결사 안에 생명평화 경, 생명평화 서약문이 있어요. 그 내용을 100배 할 때마다 풀어서 생각하면서 절을 올리는 겁니다. 20명 이상 되는 분들이 녹음을 했어요. 시작은 도법스님이 하고요. 그 당시 탁발순례를 하던 분들이 함께 만들었어요. 지금도 강정에서는 아침마다 100배를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매일 아침 7시에 100배를 시작하고 11시에 천주교 미사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개신교 예배가 있고요. 어쨌든 100배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는데 누구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들여다보게 되어 있어요. 자기를 성찰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100배를 하다 보면 100배의 내용이 담은 힘이 자연스럽게 내면에 자리 잡게 됩니다. 참회와 성찰과 발원이 담겨 있어요.
신채원 : 목회자로 살면서 생명평화운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생명평화운동을 하면서 목회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목사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전진택 : 지금은 꼭 이래야 한다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많이 없어졌어요.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이 편싸움이라는 끊임없는 악순환을 끝내는 법이 없어요. 제 꿈은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맛보는 것입니다.
신채원 :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과 확산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작은 평화를 이루면서 사는 것 중에 어떤 걸까요?
전진택 : 궁극적으로 생각만 해도 설레는 그림이 있어요. 유토피아, 개벽의 세상처럼 그 세상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믿어요. 할 수 있으면 내가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는 것.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겠죠. 국가권력이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넘어간다고 크게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안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다양하게 여기, 저기서 나라에 기대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해요. 희망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생각의 꼬리를 물면 될 것 같거든요. 우리가 원하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내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내가 그걸 못보고 죽어도 30년의 뒤에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절망을 바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절망적이라고 말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라고요. 바닥을 쳤으니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싶어요.
전진택 1962 년 강원도 영월 출생 . 연세대 신학과 졸업 . 생명평화결사 대외협력 위원장 .강진 남녘교회 목사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