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평화운동과 충북지역의 동학운동의 미래를 위한 담론
이 이야기는 충북 지역의 동학과 생명평화운동을 주제로 한 가벼운 담론 정도로 볼 수 있다. 두 선생과의 대화는 3년 전인 2013년에 필자가 보은취회 120돌을 기념하여 기록했던 녹취록에서 출발한다. 담론의 내용은 세 차례 봄이 오고 가는 동안 그 사이 매월 개벽신문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필자에게 늘 동학의 소리를 일깨워주던 지침서와도 같았다. 두 선생을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충북발전연구원 김양식박사와 생태교육연구소 ‘터’ 김태종 소장을 만나 오는 6월에 열리는 보은취회를 앞두고 충북 지역의 동학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채원 : 두 분은 충북 지역의 역사적 산실을 연구하고 계시고, 생명평화운동에 오랜 세월을 바쳐 오셨습니다. 오늘 두 분께 생명평화운동과 동학운동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양식 : 오랜만에 뵙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여기까지 동학 이야기를 하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종 : 잘 지내셨지요?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뵙기가 어렵네요. 오랜만에 동학 이야기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신채원 : 오랫동안 보은취회 행사를 지켜보셨을 텐데요, 최근에도 보은취회에 참여를 하셨는지요. 120돌 이전과 그 이후에 이어진 행사들은 그 성격이 많은 면에서 달라져 있던데요.
김양식 : 연구를 하는 학자의 눈으로, 또 충북도민으로서 매년 보은취회 행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보은취회가 취지나 이념들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성대하게 꾸려져 나가는 보은의 동학정신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모습들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런 만큼 동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됩니다. 대안교육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이 뒷받침되어 새로운 형식으로 동학을 말하는 부분은 희망적으로 보이지만 행사를 자발성, 헌신성에 의존할 경우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신채원 :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동학과 관련된 단체에서 바라볼 때는 보은취회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매년 이어지고 있는 자발성이 가장 큰 긍정적 요인이기도 하고요.
김태종 : 오랫동안 동학 정신이 깔려 있는 행사를 이어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죠. 그러나 동학정신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를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참가자들을 동학이라는 끈으로 묶어낼 수 있는 힘을 유지했으면 합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참가자들이 자기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서 동학정신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에는 얼마나 영향을 줬을까도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김양식 : 모든 사물은 일정한 원심력과 구심력이 작용해야 건강하게 갈 수 있는데, 박달한(1998년부터 19년째 보은취회 행사를 이끌어오며 동학운동을 실천하고 있다.)이라는 인물이 보은의 동학을 끌고 온 힘도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넘어섰으면 좋겠어요. 보은 동학의 정신이 보은취회를 끌고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도록 말이죠.
김태종 : 120년 전 당시의 보은취회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핵심 지도부가 있었고 접주들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던 것처럼 동학정신을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행사를 끌어가야 하겠지요. 또 보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혁명을 꿈꾸며 전국에서 모여든 죄 없는 백성들이 처참하게 피맺힌 한을품고 죽었습니다. 보은취회에 참여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해마다 그 죽은 넋들이 분명 그 자리에 모일 것이고 그들이 “당신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물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신채원 : 동학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행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 같습니다. 장내리에 기념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진행된 바가 있었는지요?
김양식 : 결론적으로 실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근 충북 지역의 동학기념사업은 과거에 비해서 활발히 이루어지고는 있어요. 옥천의 경우 답사 형태로 동학유적지 기행이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청산 한곡리에 기념공원이 조성이 되었죠. 그곳에 저수지가 크게 있고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요. 그 언저리가 동학군들의 훈련장이었다고 해요. ‘청산에 가면 동학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2014년에 기념공원조성까지는 이어졌지만 옥천군민이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동학농민혁명 계승 공간으로는 자리 잡지 못했어요. 보은의경우도 마찬가지로 2006년도에 충청북도에서 충북동학농민혁명 기본계획을 수립했으나 안타깝게도 실천으로 이어진 것은 없습니다.
신채원: 여전히 동학에 대한 관심의 부재가 큰 숙제로 남았네요. 안타깝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최초로 실현된 것이 보은취회였다고 보는데요, 충북 지역 시민운동 이야기를 동학적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김태종 : 동학의 정신에서 동학을 알고 하는 사람, 동학에 이름을 걸지 않고 동학을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일부는 이름은 걸어 놓고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사람이 있고요. 운동 진영이 지향하는 것과 동학에서 말하는 새로운 세상의 연결점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 건강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또 어디를 바라보고 갈 것인지가 화두가 아닐까요? 금년에 제가 얻은 말 중에 ‘아래로 내려가면 사랑할 일만 생기고 위로 올라가면 다툴 일만 생긴다’는 말이 있는데, 동학정신의 시천주라는 말 자체가 아래로 내려가며 사랑할 일들을 만들어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낮고 천하고 짓밟히고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이 동학이 아닌가 싶어요.
김양식 : 그런 부분들이 공감된다면 얼마든지 동학과 시민운동이 연대할 수 있는데, 시민운동 자체가 동학정신을 계승하는 것을 유연한 자세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즘 동학에 대한 계승사업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한쪽은 농민혁명에 초점을 두고, 다른 한쪽은 동학의 정신, 주로 천도교와 그 뜻을 함께합니다. 전자는 지나치게 역사적 사실에 의미를 둔 나머지 현실과 고리가 끊겨 동력을 잃어 가죠. 사회적 공감대가 상실되기도 하고요. 최근 동학 중심의 운동은 지나치게 동학 중심으로 가기 때문에 사회의식이나 미래지향성이 떨어져 동학이 그들의 이야기로만 흘러가는 측면도 있어요.
김태종 : 네, 박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동학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는 동학도들이 끌어안을 과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천도교와 동학은 우리 5천 년의 역사가 빚어낸 큰 자산입니다. 소중하게 빚어서 보석처럼 빛나게 해야 합니다.
김양식 : 과연 동학과 동학혁명이 꿈꾼 세상은 무엇이었을까요? 동학은 미완의 혁명이잖아요. 현재진행형이거든요. 120년 전 동학도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말할 때 그 지향점을 현재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김태종 : 시민운동과 동학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면, 시민 운동을 어떻게 동학이라는 논리 체계로 설명해 내고 동학이 시민운동과 연대해서 새로운 세계와 동력을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 말할 수 있겠죠.
신채원 : 과연 동학이 꿈꾼 세상이란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김양식 : 지난 12월에 경주에서 특강을 했어요. 동학이 꿈꾼 세상을 주제로요. 이때의 발표에서 동학이 꿈꾼 세상을 크게 네 가지로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우리 중심의 학문을 정립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입은 가장뼈아픈 상처는 우리의 사상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문이 말살되었죠. 조선의 것은 낡은 것으로, 일본을 통해 들어온 사상이나 가치 체계가 옳은 것으로 인식되었고요.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교육이 이어지면서 조선왕조 5백 년의 사상과 가치 체계가 전도되었어요. 그렇지만 우리의 DNA는 그것을 기억합니다.
동학은 성리학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동경대전을 보면 언어 체계의 골간은 성리학입니다. 성리학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가장 진보적으로 갈라져 나온것이 동학입니다.
둘째, 동학의 ‘유무상자’를 들 수 있습니다. 나눔과 배려입니다. 우리 사회는 불균형이 심화되어 어느 때보다도 나눔과 배려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것이 동학 실천의 한 범주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인내천에서 나온 ‘인간 존중 사회’를 말합니다.
네 번째, 당시 동학군들이 스스로를 옳을 의(義) 자를 써서 의군(義軍)이라고했어요. 1차 동학농민혁명기에 전봉준이 썼던 본부를 ‘제중의소(濟衆義所)’라고했어요. 민중을 구원하는 의로운 곳이라는 뜻이에요. 옳을 ‘의’ 자라는 담론이 19세기에 들어와 민중의 정의론으로 확대되고 발전되어 나갑니다. 화적, 의적, 활빈당 등 중세사회가 해체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죠. 동학농민혁명의 목적은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었어요. 지금도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많은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이루지 못한 동학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현대판 동학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민운동이라고 할까요.
신채원 :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정의롭고 바른 사회를 위해 투쟁하시는 분들을 동학으로 말할 수있을까요
김태종 : ‘의’를 누가 어떤 자리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회 안의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의’가 강조된다면 나머지 집단이나 사회구성원에게 그 ‘의’가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어요. 그러나 동학에서 말하는 ‘의’는특정 세력이나 특정 계층에서 말하는 ‘의’가 아니고 보편적인 ‘의’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노동 문제에 있어서도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 사람을 하늘이라고 말하고, 모실 수 있는 동학이라는 이름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요?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것이 동학에서 말한 ‘의’이기도 하고 그것만 가지고도 우리는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시민사회 운동에서 동학 이야기, 현장 이야기가 은연중에 알려지고, 한때 기독교에서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처럼 익명의 동학도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길벗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커질수록 단단해지고굳이 이름 붙일 필요 없이 동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김양식 : 우리 사회가 과거에는 하나의 담론에 대중이 공감하던 시대였다면, 현재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바람직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요. 동학이라는 것에도 다양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신채원 : 21세기 수운을 찾는다면 누가 있을까요? 충북 지역이 동학에 관심이 크게 없다는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해월 선생 이후 충북 태생인 의암 손병희 선생께서 천도교의 3대 교주가 되었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충북 지역 출신의 인물이 여섯 명이나 됩니다. 또 생명평화운동 사례를 보면 충북이 압도적이기도 하고요.
김태종 : 늘 계속해서 과거의 동학과 현재 동학의 연결점을 아주 유연하게 찾아내고 오늘의 동학이 내일의 동학을 말하기 위해 누가 수운인가를 말하는 것 말고 다가올 시대의 수운을 기다리며 오늘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교에서 미륵불이, 기독교에서 재림할 예수를 말하듯 앞으로 미래의 수운을 이야기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미래의 수운일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이 시대의 동학운동이 아닐까요.
신채원 : 이 시대 동학인에게 깊은 성찰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김양식 박사님께서는 동학을 주제로 오랫동안 연구를 하고 계신데, 이 시대 동학운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김양식 :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은 나눠서 봐야 합니다. 동학농민혁명에 초점을 맞춘 단체는 향토사에 집중합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현대적 문제의식이 떨어지고 갈수록 입지가 축소되죠. 동학 유적지와 각 지역 동학농민혁명 계승 사업단체들도 동력이 떨어지고 열기도식어 가고 있는 것이 우려되는 지점입니다.
대신 동학의 정신 중에 인내천에 초점을 맞춘 생명운동이 한울연대와 같은 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러나 동학이 일반사회운동, 시민운동까지 확장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내부에서는 활발해지는데 확장되지는 않는 것이죠. 한계를 극복하려면 지향성과 영역을 확대해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과연 동
학농민운동이 꿈꾼 세상이 무엇이었는가의 담론 확장이 필요하겠지요.
신채원 : 자발적으로 동학을 공부하는 모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충북 지역에도 동학을 공부하는 모임이 있는지요?
김양식 : 제가 120주년 때 동학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 모임에서 동경대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했고,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성리학 공부를 하고 있어요. 제가 밟아 나간 과정을 함께 가는 거죠. 동학을 ‘유불선합일’이라고 하는데, 성리학의 세계관을 알아야 동학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궁극에는 동학 공부죠. 동학은 접으로 확장시켜 나갔잖아요. 들불처럼 일어나서 퍼져 나갔죠. 박맹수 교수님(동학 연구가, 원광대)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동학이 꿈꾼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구체적인 실천 방향으로 접 모임을 활성화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임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시민사회 발전에 큰 동력이 될 것입니다.
시민이 건강해지는 사회는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마음수행이나 수련을 병행하고 생활공동체를 지향하는 문화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동학의현대판 접모임이 동학을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신채원 : 120년 전 보은취회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보은이 교통의 요지였으나 지금은 지역적 네트워크 부분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서 보은취회 안에서 동학의 정신을 담아내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김양식 : 맞습니다. 보은취회가 해야 할 역할이 큽니다. 120년 전, 전국에서 2만여 명이 보였던 대규모 집회는 한국 근대 최초의 집회였습니다. 보은이 전국에흩어져 있는 접주들을 아우르는 것까지는 어렵겠지만 그 장소성을 보듬어 가는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채원 : 최근 들어 민중총궐기대회와 같은 대규모 집회를 바라보면서 저는 보은취회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120년 전 보은으로 모여든 발걸음도 그러했을 거라고요. 소장님께서는 어떻게바라보시는지요?
김태종 : 나는 청주를 잘 벗어나지 않는 편입니다. 이 지역에서 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그 힘이 넘쳐 서울로 갔을 때 민중의 조직된 힘이 생길 겁니다. 당시의 보은취회가 최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와 내용상 일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보은취회 역시 지금 같은 지역 운동과 더불어 서울과의 유기적 연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접은 120년 전의 형태이지만 그 접의 형태를 넘어 다양성을 아우른다면 21세기 접이 성공하겠지요. 김 박사님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신 이야기처럼 다양한 시민의 모임들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충북 지역만보아도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생겨나고 있어요. 작은 단체들인데, 통일 문제를 다루던 조직들이 재정비를 통해 ‘우리의 소원은’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핵 발전 문제에 대해 심각해지니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급식을 위한 충북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체도 생겨났어요. 탈핵운동까지로 조금 확대하면 ‘탈핵충북시민행동’이라는 단체도 출범했는데, 이런 것들이 접의 오늘날 형태가 아닌가요?이런 ‘접’ 형태의 작은 모임들이 유기적인 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커다
란 우리 역사를 끌어안을 수 있는 끈으로 묶어 가는 일이 필요할 겁니다. 동학을공부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짓밟히는 사람들과 그 현장을 돌보는 사람들이 그물을 형성하는 것처럼요. 시간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정리된 이야기들이 동학으로 본다면 경전으로 태어났을 겁니다. 우리 시대에 그 이야기가다시 나오고 걸러내고 120년 전에 동학에서 나온 경전들을 중첩해서 함께 읽어낸다면 살아있는 오늘의 경전일 수 있고 또 그 경전을 붙잡고 공부한 사람들이 구체적 실천을 통해 내일의 희망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채원 : 지금 이 시대는 모순이나 한계로부터 오는 사회의 위기, 생명 전체의 위기라고 합니다.수운 선생께서 살아계시다면 동학의 관점은 생명사상으로 펼쳐졌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김태종 : 120년 전 경전은 오늘 내가 어디로 갈 건지를 묻습니다. 사회 모순이 드러나는 다양한 현장 안에서 동학의 눈으로 문제를 읽어내고, 동학의 힘으로 풀어내고 세상에서 동학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할 겁니다.
신채원 : 지금을 전환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수운선생이나 해월 선생께서 지금의 시대적 상황을바라본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어떤 답을주셨을까요?
김태종 : 내가 처음 운동판에 들어와 20년간 ‘세상을 바꿔야 한다, 악한 사람들을 물리치자.’ 이런 이야기를 나를 바라보지 않고 계속 주장해 왔는데, 그것이 90년대 초에 동학을 공부하면서 악한 사람을 바꾸기 전에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어요.바꿀 수 없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겁함입니다. 본질은 그대로 두고 구호만 외치지 않았나 싶었어요. 나를 바꾸려고 할 때 수운과 해월의 ‘네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금도 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걸음걸이 하나를 못 바꿔요.
김양식 : 저는 최근에 시골 생활을 하다 보니 풀을 뽑는 일이 많은데, 풀을 뽑다 가 ‘향아설위’라는 말이 지나가더군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찾아보게되었어요. 풀을 뽑으면서 자기 성찰을 하곤 하는데, ‘나는 왜 이것을 뽑고 있지?’ 하면서 풀을 향한 관심이 나에게 돌아오는 그런 것을 체험하면서 해월 선생의 향아설위라는 말씀은 자기 변형, 자기 혁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장님께서 자세 하나를 못 바꾼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에 공감합니다. 인간은 철저히 패턴화된 존재인데, 결국 향아설위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자기 혁신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성찰이 올 때 난세에, 변혁기에, 개벽 시대에 주인공이되는 것이 아닐까요.
신채원 : 어느 때보다도 동학의 소리가 필요한 시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동학을 깊이 연구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김양식 : 이제는 연구를 넘어 삶 자체가 필요합니다. 동학적인 삶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수운 선생과 해월 선생을 보면 기도를 많이 합니다. 집중 수련의 기도를요. 일기도와 같은 자기 수련을 하셨어요. 그것을 통해 성찰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모습들이 이 시대에도 필요합니다. 바로 이 시대에 동학이라는 말이 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태종 : 동학이라는 말 안에 담기는 내용들을 어떻게 채워 넣고, 어떻게 형식을 결정할 건지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동학이 지향해야 할 지점, 이를테면 수운 선생이 19세기가 아니고 21세기를 산다면 어떤 각성을 하실지를 그림으로 그려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다 싶어요. 그 당시 수운 선생이 펼치고자 했던 새로운 세상에의 그림이 넓어지고 깊어지지 않을까요.
김양식 : 동학의 정신은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맞서 한계를 극복하고 생명평화사상의 기초를 실천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동학정신의 미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채원 : 오늘 두 분께서 나눈 말씀들이 생명평화사상에 뿌리내린 동학정신과 이를 꽃피우는 21세기 동학인들에게 많은 지혜로 스며들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속살거리고 달빛이 어둠을 걷어내는 밤, 새 세상을 꿈꾸던 뜨거운
눈물들은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120년을 흘렀습니다. 그날 밤 부르던 노래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깃발이 나부낄 때마다 어디선가 바
람 되어 아직도 춤을 추는 넋이 있으므로 우리는 아직 희망을 믿기로 합니다.
김양식
1960년 충남 천안. 단국대 사학과 박사. 현재 충북발전연구
원 수석연구위원이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 저서로는
『근대사회변동과 농민전쟁』, 『근대권력과 토지』, 『새야 새야
파랑새야』, 『충북 하늘 위에 피어난 녹두꽃』 등이 있다. 이공
계 출신이지만 80년대 반정부 투쟁에 나서면서 고질적인 사
회문제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껴 역사교육학과로 전공을 바꿔
오랜 시간 동학을 주 전공으로 연구해 왔으며 충북지역의 동
학 교단의 역할, 혁명에 투신한 충북인 등 지역사회를 중심으
로 한 동학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김태종
1953년 충북 청주. 목사.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신학석
사. 현재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
회의’ 상임대표. ‘비정규직 없는 충북만들기 운동본부’ 상임대
표. 저서로 『나 찾으러 가는 길 』이 있다. 노자 도덕경 공부모
임과 명상모임, 환경운동, 노동운동현장 등에서 다양한 소통
의 화두를 제시하며 이른바 기독교 사회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2013년 보은취회120돌에 <수운과 노자>를 주제로 강
연을 한 바 있다.4
취재·글 / 신채원 | 미디어세림 대표·본지 편집위원 김양식 (충북발전연구원 수석연구원)·김태종 (목사,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정리 : 신채원(미디어세림 대표, 개벽신문 편집위원) / 영상촬영 : 김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