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채원

소설가의 무릎

– 사람은 모두가 우주, 소설가 김경욱

누군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곁에 있어 줄 것.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안아줄 것. 또 다른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진심이 통하는 기적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이번 호 따뜻한 인터뷰의 주인공은 소설가 김경욱입니다. 여름의 문턱에 막 접어들었을 무렵에 만나 8월의 마지막 날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니, 올 여름은 온전히 김 작가와 함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작을 하기로도 유명한 그였기에모처럼 만에 인터뷰 준비를 핑계로 한 사람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김 작가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람은 모두가 우주’라고 말하며, 유난히 큰 두 눈이 깜빡일 때마다 소설 속에서 만난 등장인물들과 마주앉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신채원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가장 최근에 쓰신 작품이 장편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는데요,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경욱 : 몇 년 전에 미국의 한 도시에 몇 달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현지 뉴스를 보게 되었어요. 서부에 있는 한 공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는 보도였어요.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잖아요. 한국에서 뉴스로 접했을 때와는 와 닿는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으니까 다른 세상 이야기구나, 흘려들었는데 미국에 와 있으니 흘려듣지 않게 되었죠. 유심히 보도를 접했고 이 도시는 안전한가 겁이 났죠. 그렇게 뉴스를 보게 되는데 문득,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1982년도에 벌어진 ‘우 순경 사건’이었어요.

신채원 : 1982년 경남 의령군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이었죠. 하룻밤에 수십 명이 희생되었더군요.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사건인가요?

김경욱 : 그렇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지 진상은 잘 모르고 있더군요. 저는 궁금해졌어요. 워낙 저도 어릴 때 일어난 사건이었고요. 그래서 자료 조사를 시작했죠. 인터넷으로 당시 신문 기사를 볼 수 있더라고요.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1982년도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보도되었던 신문 기사를요.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었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신문 어디에서도 희생된 분들의 삶은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분들을 상상하고 가해자 관점이 아니라 희생자들의 삶을 상상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되었어요.

신채원 :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생각해 내신 건가요?

김경욱 :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섬뜩하게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 또는 점점 어두워지면서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이 안 되는 시간을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제가 이 사건에서 주목했던 것은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던 순경이 총을 들고 다녔을 때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고 믿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어요.

신채원 : 피해자가 많았어요.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가능했을까요?

김경욱 : 50명이 넘는 사람이 하룻밤에 희생되었어요. 그 작은 마을에 총소리가 들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알아보고 몸을 피했을 텐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요? 몇 가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었어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는 범인이 바로 믿었던 순경이었다는 것이었어요. 무슨 일인지 묻는 마을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죠. 무장공비가 나타났다고요.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고 순경에게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어요. 휴전선에서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산골에서 조차도 분단 모순이 가져온, 분단의 그림자가 목숨을 잃게 한거죠. 그런 것처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많이 개입되어 희생자가 커졌어요.

신채원 :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형식이 새로웠습니다. 희생자들 각자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형식이었는데, 이야기를 읽을수록 소설 속에서 희생 당한 분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이야기 끝에 이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결국 이 사람들이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읽어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김경욱 : 기사를 보고 반사회적인 한 인물의 일탈적 행위로 보였다면 소설로 쓰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사회구조적 모순이 보였고, 그 모순이 현대적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다른 모순들로 남아있었기에 소설로 쓰기로 마음먹었죠. 자료 조사를 시작하고 도입부를 쓰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소설을 쓰면서 중점을 뒀던 부분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이렇게 희생자가 많았는지, 그 궁금증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던 사람들이 그 밤에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을까로 이어졌어요.

신채원 : 실화를 바탕에 둔 소설이라서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알려져 있는 비슷한 사건들을보면, 정작 사람은 없고 사건만 남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김경욱 : 사건이 진행되는 관점이 아닌 어떤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이 희생되었는 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소설을 풀어간 이유는 보통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이 희생자들이 몇 명이었다, 숫자로만 기억하잖아요. 누구 외 몇 명이 사망,이렇게요. 그래서 소설이 할 수 있는 몫은 따로 있을 것이다,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을 그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끌고 나갔어요. 픽션이지만 희생자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요.

신채원 : ‘안타깝게 쓰러져 간 56명의 우주들’이라고 썼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주로서의 인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김경욱 :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고 희생자는 잊혀지는 경우가 많아요. 소설을 통해서라도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저널이 기억하지 않는 한 명 한 명의 삶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문학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고, 무엇보다도 그 우주들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한 사람이 등장하고 한 사람과 연결된 관계들의 조합을 이끌어내면서 개별적 존재가 아닌 단계로서의 존재들 말이죠.

신채원 : 소설 속에 등장했던 것처럼 야구를 좋아했던 소년도 있었을 것이고, 더 넓은 도시를 동경하던 젊은 여성도 있었겠죠. 그런 이야기들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소설을 접하면서 작가님 내면으로부터 왔을 것만 같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김경욱 : 소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글을 쓰면 쓸수록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이란 무엇인지를요. 인간 자체가 미스터리인 거죠.

신채원 :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일 수도 있고 작가님이 만들어낸 인물들이겠지만 ‘작가들은 성실하게 살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거울이라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님도 역시 성실한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경욱 : 그 성실함이 보통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성실함과 글을 쓸 때 필요한 성실함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성실함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글쓰기에 있어서 성실함은 자기가 만들어 낸 인물에 대한 성실함입니다. 예술을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저는 소설은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결국 많은 사람들의 관계 맺음,이를테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들이 빚어낸 구조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은 제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자양분을 얻어낸 것이고 빚을 지고 있는 거죠. 글을 쓰는 것조차도요.

신채원 : 결국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작가님 스스로를 조금 더 성실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말씀이시네요. 외롭진 않으시겠어요.

김경욱 : 글을 쓸 수 있도록 저와 관계 맺고 있는 타인에 대한 성실함이라고 확장시켜 말할 수 있죠. 그 성실함이 글 안에서는 사회의 부조리한 면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 쓴다든지. 그 화두에 대해 제가 견지해야 할 성실함이 있어요. 이야기를 통해 보여줘야 할 성실함, 이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다뤄야 한다는 의미라고할까요?

신채원 : 등장인물들의 세계가 때로 작가님이 의도한 대로 가지 않고 생명력을 가진 사람처럼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기도 하겠군요.

김경욱 : 그렇죠. 끝까지 이야기를 짜 놓지 않고 도입부를 구상하고 글을 쓰는데 저도 이 인물이 어떻게 갈지 모르잖아요. 대체로 저에게서 독립해서 자기 스스로의 판단과 가치관에 따라 움직일 때 이야기가 더 좋아지더라고요. 제 안에 반영물이 줄어들수록 흥미로워지는 거겠죠.

신채원 : 등단 이후로 작품을 많이 쓰신 편인데, 장편은 이야기를 오래 끌고 가야 하는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김경욱 : 저는 잠을 많이 잡니다. 소설은 노동의 측면이 강해요. 앉아서 두 무릎으로 버티고 있는 만큼 나오는 것 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작가들마다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만 저는 잠을 많이 자고 많이 걷는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멋진 생각이나 좋은 문장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좋은 디테일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집중하고 할 때 생겨나더라고요. 물론 소설도 뭔가 주변 일상에서 관찰했던 것들이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소설은 그 순간을 변용하는 상황에 맞게 가공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 작업이 육체적 노동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구력이 필요한 거죠.

신채원 : 사십대 중반을 넘기셨는데, 30대 때와는 확실히 다른가요?

김경욱 : 점점 힘에 부치긴 해서 의식적으로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눈도 침침해지고 있고요. 특히 올해는 ‘여름을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하게 되더군요.집중해서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요.

신채원 : 작가님과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여름 한철을 보냈는데요, 작가님께서 등단 이후에 출간한 작품들을 차례로 읽기도 하고, 초기 작품과 최근 작품을 번갈아 읽기도 하며 그렇게 한 작가의 성장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화두가 있던데, 빛과 어둠, 장국영, 야구 등등 아주 많은 소재들이 10년이 지나 조금 더 확장된 스토리로 등장하더군요. 당시의 사회적 정황들을 인식하고 작품 안에 등장시키는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흥미로웠습니다.

김경욱 : 연결이 다 되어 있죠. 제 세대가 그 시대에 즐겼던 문화들이기도 했고요. 제가 90학번인데 제가 대학을 갔을 때는 이른바 80년대 운동의 분위기는 아니었고, 홍콩영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서태지가 나왔고 억압되었던 대중문화가 분출된 시기였어요. 제 세대에게는 강렬한 원체험이었을 거예요. 아무래도 제게 영향을 많이 끼친 이야기를 많이 썼겠죠. 20대 때부터 소설을 발표했는데 20대 때는 바그다드카페, 베티를 만나러 가다, 아웃사이더, 대중음악 이런데서 모티브를 얻어서 쓴 소설들이 많았어요. 제 삶이 반영된 것이죠. 일상에서 관심을 두는 것들이 아무래도 소설 속에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신채원 : 우리는 모두 광주에 빚이 있잖아요. 고향이 광주로 알려져 있는데요. 작품에서 광주 이야기를 다루실 계획도 있나요?

김경욱 : 제 앞 세대에서는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썼죠. 의식적으로 안 쓰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 이야기를 쓰더라도 체험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광주에서 자랐으니 5·18 이야기를 작가로서 할 이야기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약에 제가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그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가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어야 쓸 수 있겠더라고요. 그 생각만 하고 계속 못썼죠. 그러다가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을 썼는데 저는 야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어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프로야구 팬이었죠.어렸을 때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호남의 응원 문화였어요. 야구 경기 끝날 때 다같이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그런 문화가 있어요. 한과 울분이 있는 것을 야구장에서 풀어내는 문화가 인상적이었어요. 80년에 광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못하는 시기에 야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나누던 이야기로 풀어냈죠.어떤 소재든 모든 작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고 자기만의 목소리가 생기면 쓴다고 생각해요. 지금 쓰지 않았다고 해서 소재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이 아니고 톤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편소설은 낚시 같은 느낌이에요. 진동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죠.

신채원 : 어머니께서 장한 예술가의 어머니 상을 받으셨더군요. 어머니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김경욱 : 어머니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셨어요. 너무 외로우셨대요. 저희가 6남매거든요. 자식들을 외롭지 않게 하셔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기르시느라 힘드셨겠죠. 제 주변에 가족이나 친인척 중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돌연변이처럼요. 그런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질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 같아요. 학교를 많이 안 다니셨지만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세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꾼에게 듣는 것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세요. 어릴 때는 무난하게 자란 편이에요.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좋아서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숙제도 열심히 하고 그랬어요.

신채원 : 서울대 영문과를 나오셨더군요. 공부를 잘하는 소년이었겠군요.

김경욱 : 보통은 독자들이 작가를 파악할 때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작가 약력의정보를 가지고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잖아요. 그 정보로 글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니까요. 학력이나 이력이 일반화될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가들의 이력이 다 다르잖아요. 이를테면 이 친구는 이래서 이런 글을 쓰는구나, 어떤 작가의 경우는 친해질수록 어떻게 이런 사람에게서 이런 글이 나올까 생각하게 될 때도 있어요.

신채원 : 소설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쓰신 글에서 ‘대화를 종결시키는 자는 작가도 화자도 아니고 독자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독자로서 철저하게 개인적인 느낌으로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작가님의 작품을 읽다가 궁금해졌습니다. 작품 중에 열린 결말이 유독 많은 이유가 뭔가요? 왜 그러시는 거죠?(웃음)

김경욱 : 제가 생각보다 많이 열려 있었나 봅니다.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웃음) 저는 제가 할 이야기를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더 이상 이야기를 하면안 된다는 심정인데 독자 입장에서는 결말을 내 주길 바라기도 하더군요. 그럼제 입장에선 재미가 없어요. 모든 걸 종결시켜 버리면 그 이야기가 해석될 여지가 좁아지거든요.

신채원 : 해석의 여지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 작가님의 작품 중에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도 생각이 나는데요, 어떻게 보셨나요? 작가님이 생각하셨던 그림과는 다를 수 있었을 텐데요.

김경욱 : 글쎄요. 제 소설과는 무관한 창작물이라고 생각해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보는 거죠. 드라마는 감독이 새롭게 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배우들과 스탭들과 함께 해석을 하죠. 어떤 장면을 연출할 때 제게 물어보고 하지 않으니까요. 결말을 독자가 완성시키듯이 스스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배우나 연출가, 그분들 안의 뭔가를 끌어내도록 문만 두드려주는 것이죠. 많이 각색될수록 좋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크겠죠. 장르마다 크리에이티비티가 다른 것같아요. 장르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이 다르니까요.

신채원 :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큰 틀에서 요즘은 대체로 원소스 멀티유즈(하나의 원형 콘텐츠가다양한 장르로 재생산되는 것)가 가능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최근 문단의 작품들이 다양한 장르의 콘텍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김경욱 : 보통은 시장에서 검증된 소스가 다른 장르에서 재생산되는데 좋은 원텍스트는 다른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저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지금 현재 단군 이래 가장 능력이 뛰어난 세대인데 취업하기 힘들고 뜻을 펼칠 기회가 줄어들고 그 분야에 진입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등단을 할무렵에만 해도 지금처럼 갈고닦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저의 경우 운이 좋아서 혼자서 재미있어서 쓰다가 작가가 되기도 했고요. 진입하기 힘든 것 같아요.마치 시험을 통과하듯이 준비를 하고, 어떤 분야로 가는 진입장벽이 높고 경쟁도치열해졌더군요.

신채원 : 그런 면에서 콘텐츠가 재생산되고 세대 간의 순환이 건강하게 이루어진다면 문학이든,문화든 더 풍성해지고 넓어지겠군요.

김경욱 : 그렇죠. 문학생태계라는 것도 자연의 생태계와 마찬가지여서 어떤 부분은 폐쇄적이고 고여 있기도 하더군요. 순환되는 구조라면 어떻게든 안에서 지켜내려고 해도 지탱될 수 없거든요. 아마도 그래도 계속 글 쓰는 사람이 있고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하고 그러면 넓은 생태계에서는 선순환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전체가 고여 있다면 멸종되었겠지요. 결국 이 질문과 만나게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가 무엇인가, 나는 왜 그것을 하는가. 그 질문에 다다르는것이죠.

신채원 : 작가님은 왜 쓰는가의 질문 앞에서 어떤 자세로 마주하고 계신가요?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김경욱 : 생각에 따라 선택을 하는 거죠. 저는 처음에 글을 쓰는 계기도 그랬지만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장 평화롭습니다. 저는 평화를 찾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할 수있습니다. 물론 마감 앞에서는 흔들리긴 하지만 가급적 평화로운 상태에서 마감을 하기 위해 미리 써 놓으려고 합니다. 가급적이면 구상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려 노력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쓰면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이 생각하고 시작하는 작업이 좋더라고요. 간단한 메모를 할 때도 있고 머릿속에 메모를 할 때도 있고요.

신채원 :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제자이면서 곧 문단에서 만날 후배가 되기도 할 텐데요, 요즘 젊은 문학도들의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또 학생들에게는 어떤 선생님이신가요?

김경욱 : 저는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글쓰기, 플롯 구성 워크숍, 픽션 창작워크숍 등을 강의하는데, 학생들을 보면 제가 그 나이 때 쓴 것보다 훨씬 잘 쓰더군요. 제가 20대 때 읽었던 독서량을 뛰어넘기도 하고요. 학생들은 예전보다 무얼 하려고 하는지 확고한 것 같아요. 수업마다 학생들이 써 온 글들을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죠. 조언이라기보다 그저 글을 읽어주는 편이에요. 독자가 되어주는 것이죠. 가르치기보다는 읽어 주고 지켜봐 주는 존재가 되어주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기도 하잖아요. 글 쓰는 친구들은 고독한 영혼들이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 친구들에게 외로움과 고독을 이해하고 지켜봐 주는존재, 그리고 책을 권해 주는 사람, 같이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혼자 습작할 때도 어떤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잖아요. 그때 저는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어요. 저는 학생들과 독서의 공동체가 되는 느낌입니다.

신채원 : 오래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작가님이 소설을 처음 쓰게 된 계기는 언제였나요,또 작가를 꿈꾸던 시절에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었나요?

김경욱 : 20대 초반에 누구나 그렇듯,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왜 존재하는가’와 같은 형이상학적이고 실존적 고민 때문에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았어요. 그럴 때 무엇인가 끄적이는 일이 스스로 가장 평화롭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게 글을 처음 쓰게 된 계기였습니다. 등단한 지 23년이 되었는데 지금도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장 평화롭습니다. 20대 때 까뮈와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했어요. ‘이방인’이나 ‘인간실격’ 같은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에서 접했던 작품들과 너무 달라서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에요. 두 작가를 알게 된 이후로 많이 찾아 읽었어요.

신채원 : 최근에 읽고 계신 책은 어떤 책인가요?

김경욱 : 최근에 인상적이었던 책은 논픽션인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러시아의 여성들의 인터뷰예요.보통 우리가 전쟁을 다룬 서사들이 남성의 시각인데, 여성의 시각과 목소리로 전쟁을 바라보는 이야기예요. 기존에 가졌던 편견들을 깨 준 전쟁이라는 역사의한 비극을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책인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신채원 : 조금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효자 책은 무엇이었나요?김경욱 : 단행본 중에서 『동화처럼』이라는 작품이었어요. 그 당시 한창 인기 있
었던 드라마에 나왔거든요. 그 도움으로 많이 팔렸습니다(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등장한 작품으로 한 출판사에서는 ‘시크릿가든 테마 도서 세트’로 마케팅 한 적도 있다).

신채원 :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문학상을 많이 수상하셨더군요. 작품을 발표하실 때마다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요. 작품 쓰실 때 기대를 좀 하시나요?

김경욱 : 그렇진 않습니다. 제가 구현해 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상상력을 담아낼 수 있는 최대치가 무엇일까만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 외에는 생각할 여력이 없어요. 물론 부담은 됩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전작으로 상을 받은 것이 내공으로 적립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다른 글을 쓸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인데,독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수상 경력을 보고 눈높이가 높아질 수 있거든요. 제게는 그것이 마일리지 같은 것이 아니고, 늘 제로베이스에서 쓸 수밖에 없으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신채원 : 그래서 작가의 말에서 “열세 번째 첫 책” 이라고 쓰신 건가요?

김경욱 : 항상 그렇게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처음 쓰는 거잖아요. 제 안에 축적된 다른 노하우가 없거든요. 이전에 썼던 이야기는 그때만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거든요. 항상 시작할 때 과연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지금은 구상하는 단계인데, 다시 충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기입니다. 낚싯대가 흔들리길 기다리고 있죠.

신채원 : 늘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계신데, 독자들이 궁극적으로 소설을 통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삶에 대한 스스로의 깨우침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꿈꾸게 하는 삶은 어떤삶인가요?

김경욱 : 결국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던 뭔가 이루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하는 거잖아요. 세상을 살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론으로 추구하는 것들에 휘둘리게 되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서 멀어지기도 하더군요.그래서 그걸 항상 잊지 말아야 하겠죠.

신채원 : 생각날 때마다 읽으시는 책도 있나요? 개벽의 독자분들께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주실만한 책이 있을까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까요.

김경욱 : 가을에 읽기 좋은 책은 위로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은 책 한 권이 떠오릅니다. 저도 읽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은 책입니다. 『반고흐의 영혼의 편지』라는책인데, 고흐가 고독한 삶을 살다가 갔잖아요. 유일한 친구였던 동생에게 쓴 편지를 모아 놓은 책인데 읽는 내내 ‘고독’이 느껴지더군요. 이렇게 고독하게 살아 가면서도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불태웠던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용기를 주는 책이 될 것입니다.

신채원 : 때로는 작가님도 고독하신가요?

김경욱 : 글쎄요. 제가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고흐가 천재적인 화가여서, 타고난 재능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편지를 보면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하고 말하며 실제로 그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뼈를깎는 노력을 하거든요.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자기가 무엇을 지향하는가를고민하고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최고의 재능은 열정과 성실함’ 이라는 것입니다. 편지를 읽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겠습니다. 책에는 편지와 그림이 같이 있어요. 그래서 그림도 감상하고 화가를 읽어내는 시간이 될 겁니다.

신채원 : 작가는 작품으로 성장한다고 하죠. 독자들도 작가와 함께 성장을 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질문을 하기 위해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께서 글을 쓸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신 말씀을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김경욱 : 저는 글을 쓸 때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고, 알고 싶은 것을 쓰는 편입니다. 쓸수록 모르겠으니까 쓰게 되기도 하고요. 어떤 것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럼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다가오게 되더군요. 죽음에 대해 쓰고 있다면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구나, 어둠에 대해 쓰고 있다면 빛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말이죠. 기자님 말씀처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는 이유는 아마도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는 것이겠죠. 단어의 반대말을 생각하면 그 의미의 짐작이 가능해지는 것처럼요.공부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하는 말처럼,

김 작가는 무릎으로 소설을 쓴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문학적 자서전 ‘아버지의 무릎’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아버지의 무릎이 오늘의 김 작가를 서 있게 하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무릎이 지탱해 줄 무수한 ‘슬하’의 작품들이, 무수한 ‘첫 책’들이 그렇게 태어난다.
‘그란디 아부지, 시방은 머시냐 구름 위에 든눠 계신당가요? 거서도 동백나무도키우고 야구중계도 보신당가요? 네, 아부지? 아부지!’ (제4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
경욱 문학적 자서전 ‘아버지의 무릎’ 중에서 발췌, 문학사상, 2016)
김경욱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작품 ‘아웃사이더’로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으로 『위험한 독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와 장편소설 『천년의 왕국』,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등이 있다.
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 제 40회 동인문학상, 제53회 현대문학상, 제3회 김승옥문학상, 제40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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