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은 내가 구성하는 것
한 계절이 다 갔다고 생각했을 때,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 비가 그치고나면 어제와 다른 계절로 접어들 거라는 것을 약속처럼 믿었던 비 오는 주말 오후였다. 태풍 ‘링링’이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을 건너가고 있다고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알려주었고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지나간 태풍들을 떠올리며 그저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또 바라볼 뿐이었다.
30년 전, 어떤 사람들은 선언했다. 이 땅에서 더는, 내가 살기 위해 죽이지 않겠다고, 나도 모르게 나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을 보듬겠다고, 나는 죽고 없을 이땅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물려주겠다는 절박한 다짐이며 희망이었다.
한살림선언 30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주요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기획 위원을 만나 한살림선언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 자리에 서있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에는 수많은 ‘어떻게’를 통해 다시 구성되는 과정이 필요했다.
진화는 진화한다
신채원 한살림연수원 사무처장으로 계시다가 학업에 매진하고 계시는데, 연구하고 계시는 ‘체계이론’은 참 낯설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생명 사상을 공부하신 거로 알고 있어요. 시대의 모순과 맞서 싸웠던 80년대 청춘의 강을 건너오시며 바라보신 그 시대의 요구였기도 했을 것 같아요. 올해 한살림선언 30년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주요섭 반갑습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신채원 지난 4일에 열렸던 한살림선언30주년 학술대회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을 토대로 인터뷰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화’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어요. 한살림선언 이후 30년간 지금의 한살림으로 진화해 온 과정이 있었을 텐데, 저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선생님을 비롯한 한살림의 구성원들이 그 안에서 함께 진화해 오신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주요섭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현재 박사과정으로 체계이론을 공부하고 있어요. 한살림선언은 생명의 자기 초월 개념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어요. 생명 사상이 한국에 들어올 때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프리초프 카프라인데, 『생명의 그물』이라는 책, 그 이후에도 카프라의 기본관점은 체계론적 사고와 세계관을 강조합니다. 교육 쪽에서는 피터센게라는 분도 체계론적 사고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채원 지난번 발표에서도 ‘체계이론으로 한살림선언 다시읽기’를 주제로 말씀하셨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선생님 연구하시는 ‘체계이론’과 한살림선언을 연결해서 보고 또 발제문을 읽으니 의외로 글이 어렵지 않게 잘 읽혀서 기뻤습니다. 30년 전에 김지하 생명 사상을 연구하셨어요. 30년이 지난 지금 한살림 선언을 다시 보시면 어떻습니까?
주요섭 한국의 생명 사상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깊은 공부가 안 되어 있었어요. 제가 한살림연수원 일을 하게 되면서 다시 보았는데, 한살림선언을 체계 이론적으로 접근한다면 한살림선언은 30년 전의 체계이론이었어요. 대학원 박사과정에 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체계이론이나 구성주의를 접하면서 학문적, 이론적으로 정립해야겠다는 계획이었어요. 한살림의 사상적 측면, 한살림운동의 활동적 측면, 운동의 매커니즘을 재정립해야 했어요.
신채원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음을 인식하신 거네요. 당사자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례연구를 하셔야겠어요.
주요섭 그렇죠. 한살림의 사례를 가지고 루만의 사회체계이론, 조직이론의 관점에서 보니까 질적 연구를 해야겠죠.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을 공부했고, 그것을 토대로 한살림의 사유, 철학, 운동구조, 조직 시스템을 보고 조금씩 정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채원 활동가로서 걸어온 길이 굉장히 긴 세월입니다. 한살림 일은 언제부터 했나요?
주요섭 활동으로 결합한 것은 2000년대 초반 한살림 정읍이 출범하면서였어요. 그전에는 1994년 대화문화아카데미 강대인 원장님, YMCA와 함께 생명 민회를 만들었죠. 생명 민회에서는 사무국장으로 일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한살림과 관계가 있었고 본격적으로 한살림 정읍 조직을 만들면서 활동을 시작한 거죠.
신채원 저의 경우는 활동가였다가 연구자로 정체성의 전환이 이루어졌는데간혹 그사이의 간극이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주요섭 저는 저의 정체성을 사회운동가로 정했고, 그러한 사회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연구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사회운동가로 살면서 연구를 주로 해 왔다고 할 수 있어요. 모심과 살림연구소장으로도 일한 바도 있고요. 연구자의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박사과정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역할이 연구자로서의 성격이 강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할 뿐이죠. 최근 체계이론이나 구성주의,그리고 마음을 연결해서 뭔가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인식론적 전환’의 이론으로 정리해서 선보여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연구에 집중하게 된 거죠. 저는 조금 더 포괄적인 면에서 제안해보고 싶었어요. 연구소에서 이론가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현장이론, 운동이론은 순수한 학문적인 것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잖아요.
신채원 한살림에서 개최한 토론회 자료집을 보다 보니 새로운 생명의 세계관을 동학에서 주체적 맥락으로 봤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살림과 동학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주요섭 30년 전에 선배들이 그렇게 바라보았죠. 동학과 한살림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와 있고 제가 지난 토론회 때 토론문에서도 썼지만, 30년 전, 40년 전에 선배님들이 동학을 다시 읽으면서 동학의 텍스트로서만이 아니라 동학을 다시 불러내서 생명 사상, 생명 운동으로 재정립했잖아요. 그것이 한살림이고, 실천, 그리고 활동으로 펼쳐진 것이 지난 30년간의 일이었습니다. 아주 심플한 이야기인데, 문제는 그다음이죠.
그때그때 다르고 그때그때 새롭다
신채원 한살림선언 당시의 생명과 지금의 생명은 또 다를 것 같습니다.
주요섭 그렇습니다. 생명이라는 개념도 다르고, 생명이라는 개념에 투사하는 자신의 경험도 다르죠. 그 생명이란 어떤 생명이냐,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개념이고, 개념은 역사적이고 시대적이지 않나요? 그때그때 다르고 맥락적이죠. 개념이 만들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쓰여집니다.
신채원 그러면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4차 산업 혁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잖아요. 과연 그것들은 무엇일까요?
주요섭 글쎄요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갈지도 모르는데…. 과연 그것을 알 수있을까요?
신채원 30년 전 한살림이 꿈꿨던 개벽은 뭐였을까요?
주요섭 한살림이 꿈꿨던 개벽 세상은 한살림이라는 말 속에 있는 것처럼 ‘함께 살림’, ‘함께 살기’였습니다. 인간끼리, 특정한 민족끼리만이 아닌 온 생명이 함께 사는, 온 생명이 자기 나름대로 삶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그런 꿈이 있었죠.
신채원 한살림선언 이후의 담론들에 주목합니다. 대항에서 대안으로서의 한살림운동으로, 환경 담론은 지속 가능 발전 담론과 결합하여 실천으로, 생명담론은 평화 담론과 결합하여 생명 평화운동으로, 성장중심 담론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서의 시스템 전환은 대안 담론으로 흘러왔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담론은 무엇일까요??
주요섭 저는 지금이 탐색기인 것 같아요. 저도 탐색하는 사람들 중 하나겠고요.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만드는 과정인 것 같아요. 생명 사상과 운동을 보면 한세대가 여기까지 왔고, 생명 담론이 다음 세대의 생명 담론으로 예컨대 시즌2로넘어가는 것 같아요, 버전 2.0으로 차원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죠.탐색과정에 ‘개벽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개벽 담론’을 탐색하고 있으니. 저는 탐색이라는 말보다 메이킹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편이긴 합니다.
신채원 저에게는 지금까지 선생님을 뵈면서, ‘한사람’, ‘다시’ 그 말들을 오래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 활동의 근거에서도 버팀목이 될 수 있게 해 준 키워드였어요. 그 부분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한사람 되기 운동’이 위로가됐고요. ‘다시’라는 말도 계속 마음에 품었던 말이었습니다.
‘다시’의 체험, 진화
신채원 한살림선언의 재구성이 생명의 자기 진화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선생님에게는 그런 경험적, 체험적 성찰의 경험이 있었나요?
주요섭‘ 깨달음’을 성찰하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겠어요. 보통 일주일 정도로 수련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저는 단축해서 1박 2일로 구성해볼까 합니다. 아직 프로그램을 오픈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지금 세 가지 테마를 준비하고 있어요. <질문의 전환, 세계관의 전환>이 테마로 1박2일 연수 프로그램이 이 있고, 두 번째는 <조직과 마음>, 이것은 조직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불통의 과학과 대화의 사건>인데, 이것은 에세이로도 쓴 것이 있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조직과 마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마음 세계가 있잖아요. 인류가 75억이면 그만큼의 마음 세계가 있고 그들은 모두 조직체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나요? 그 속에서 고통이 크지 않을까요? 그것을 새롭게 바라보자고 생각했어요. 체계 이론적 베이스를 가지고요.
신채원 프로그램이 모두 하나같이 매력적인 키워드네요.
주요섭 특별프로그램으로 <체계이론을 읽는 금강경, 반야심경>도 있어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한살림연수원 실무자 활동가들과 하고 있어요. <불통의과학, 대화의 사건>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우주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소통은 기적과 같은 하나의 사건이다.
신채원 맞아요, 선생님.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제 진심이 그에게 통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것 같아요. 최근에 드는 생각은 제가 누굴 만나도 저를 잃지 않는 자신감 같은 게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것은 흔한 말로 ‘결’이라고 하잖아요. 선한 목적을 가진 결, 그런 사람들을 끊임없이 찾고 있더라고요. 그분들로 인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저는 그런 과정들이 모두 기적 같아요.
주요섭 제가 느끼는 것은 그것도 인간이 진화해서라고 생각하는데, 다들 자기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 세계를 자각하는 사람이 있고 확장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잊고 싶은 사람도 있더라는 겁니다. 그런 쪽으로 자기 세계를 확장하고 만들어가는 쪽으로 사회적인 진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인간의 진화와함께 가는 것 같아요. 마음 세계가 다른 두 마음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잖아요.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어요. 대화를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잖아요.우리는 계속 소통해야 하니까요. 그 소통하는 과정에 상처 입고 마음 다치고 그러면서 진화하는 거라고 봐요.
신채원 이론만 가지고 다 되는 건 아니고 모든 건 다 마음에서 하는 일이잖아요. 마음이 가지 않으면 해 봐야 의미가 없으니까요. 한살림이 지향하는 한 방향의 결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생산자분들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느린 삶의 가치를 택한 분들이잖아요. 마음으로 만나야 할 것 같아요.
주요섭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봅니다. 개인적으로 한살림에 대한 가치를 보는 것 또한 제 마음 세계의 일부인 것 같아요. 마음 세계는 무궁하니까요. 내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 세계가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말입니다.우리가 경험한 것은 지도처럼 실제 땅이 아닌 특징을 뽑아서 일부를 표현할수 있다면, 사람들도 저마다의 특징을 보면서 나누고 대화하며 각각의 다른 자기 체험 속에서 다른 경험을 떠올리겠죠. 그런 점에서 저는 마음 세계에 한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는 그 세계의 크기가 엄청난데 그것을 조직으로 환원하려 했던 것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조직은 마음들이 모여서 조직이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일부가 조직의 코드로 연결되어 조직을 이루는 것이지, 소박하게 마음이 모이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겁니다.
신채원 그런데 저는 아직 마음이 가지고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믿고 싶어요.
주요섭 그것은 이념이죠. 실재를 관찰한 결과가 아니라. 우린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고 생존본능을 위해 그렇게 믿고 싶은 거죠. 부부나 가족도 믿고 싶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믿고 싶은 현실과는 매우 다르잖아요. 그것을 저는 조직이나 사회를 바라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신채원 자기 선언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지금 말씀하신 내용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사회의 흐름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과거의 민중들의 조직된 힘으로써의 광장이 이제는 ‘나의 광장’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 된 것도 그렇고요.
주요섭 메시지 생산자가 외부에 있고 나는 그것을 따르거나 안 따르거나였는데, 그것도 자세히 보면 자기가 동의하니까 판단하고 따르는 거죠. 그러나 지금은 자기 이야기를 메이킹 하고 싶은 거죠. 자기 스스로 만든 이야기를 펼치고 선언하고 내 생각이 이렇다고,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런 흐름이 미투와도 연결되었죠. 자기의 느낌과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30년 전에는 안 그랬어요. 진화를 넘어선 개벽이죠.
신채원 이야기는 마침내 ‘개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책 전환이야기』가 세상에 나온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또 얼마나 새로워졌을까요?
주요섭 단절적 불연속적인 연속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것은 불연속적이잖아요. 애벌레가 1㎝에서 2㎝가 되는 것은 연속적이지만 애벌레가 크다가 어느 순간 크기를 멈추고 내부의 세포분열을 하면서 나비가되잖아요. 그건 불연속적이잖아요. 개벽의 은유라고 할 수 있어요.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전환이라는 표현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요.전환이라는 말 말고 다른 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개벽’의 의미를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자기 안에서의 개벽은 자기의 삶 속에서 자각한 나에서 또다른 나를 자각하면서 이뤄지는 거거든요. 어떤 상태를 경과하면서 form A에서B로 바뀌는 겁니다. 마음의 사고방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질적 변태가 이뤄졌을때 마음의 자기 개벽, 다시 개벽이 이뤄지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환이라는
말은 그런 식으로 정리를 다시 하게 되었고요. 진화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 세계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움직임의 패턴이.
다시 개벽, 다시 한살림선언
신채원 처음의 이야기를 다시 돌이켜 봅니다. 한살림선언 30년을 맞이하며 오늘날 다시 한살림선언을 한다면 어떤 의제를 가지고 갈까요?
주요섭 의제보다도 한살림선언이 바탕이 되었던 존재론적 사유에서 생성론적 세계관을 다시 보고 싶어요. 고정된 실체로서가 아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계속 움직이고, ‘되어지고’ 있는 것으로요. 그렇게 존재론에서 생성론으로의 전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철저했다고 보이진 않아요.이후에도 존재론적 사고를 계속 했거든요.
신채원 지금 한살림선언을 다시 볼 때, 보이는 한계들도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주요섭 한살림선언에서, 자기가 자기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구성주의적 사유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그런 사유의 단초들은 있어요. 여전히 객관적 사고를 합니다. 내부에 객관적 세계가 있고, 나는 관찰자로서 이 세계를 떨어져서 바라본다는 듯한 느낌으로 서술합니다.밖에서 관찰해보니 옛날에는 존재로서의 하나가 있었고 이것을 생성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선언했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 생성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답은 나와 있습니다. 생성은 스스로 하는 것이고, 인간도 자기 생성을 하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다시 새로운 차원으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신채원 체계이론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보시나요?
주요섭 구성주의적 사고는 체계이론을 작동적 구성이라고 했는데, 이 세계가 생명, 마음, 혹은 체계 일반이 구성하는 현실로 보는 관점입니다. 객관적으로 있는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이런 관점으로 봄으로써 세계를 만들어낸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짓는다’는 개념인데 과거에 객관적으로 세계가 존재하고 나는 그것을 본다는 것, 내가 잘못 본 것은 뭐냐, 더 잘 볼 수도 있었는데 못 봤다는 거죠.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누군가는 이렇게 현실을 구성해서 보는 거고, 또 어떤 사람은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한 겁니다. ‘본다’는 것은 너무 시각에 국한되는 것 같아요. 각각 다르게 경험된 현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개인으로서 다른 현실이 있어요. 한국 사람은 한국의 언어 체계를 통해 한국이라는 세계를 구성해서 사는 것처럼 한살림은 한살림의 세계를 사는 거라고 저는 몇 년간 공부하면서 그렇게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했는데 30년 전의 한살림선언은 기존의 세계인식이 잘못되었고 살아있는 생성론적 세계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어요.
신채원 그렇다면 늘 묻고 또 물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입니다만, 생명은 뭘까요?
주요섭 제가 질문의 전환이라는 말을 했어요. 생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생명의 속성이나 본질을 묻는 거죠. 그런데 속성이나 본질을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내적으로 장착된 안경을 끼고 자기 경험,사유체계, 자신의 학습으로 형성된 자기의 구성의 틀이 있잖아요. 이렇게 물어야 해요. 질문의 전환이 필요합니다.“당신은 생명을 어떻게 경험하셨습니까, 어떻게 체험하셨습니까”‘무엇’ 질문에서 ‘어떻게’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각자 자기의 경험이 있을 겁니다.나에게 생명은 “이렇게 경험했어요.” “책에는 이렇게 나왔는데내가 경험한 현실이 유사해서 그
이론에 공감했어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싸울 일도 없고 더 풍부해졌겠죠. 또 “당신의 경험은 어땠습니까?” 하고 물으면 경험의 양이 많아지겠죠.
신채원 그렇군요. 다시 여쭙습니다. 생명을 어떻게 경험하고 체험하셨나요? 전환이라는 키워드에대해 다양한 경험과 관점을 통해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신 것 같아요.
주요섭 전환이야기가 정말 수준 높은 이론으로 정리하고 거기에 공감해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5년 전에는 내가 그 ‘전환’의 의미를 새로 알아냈다는 느낌으로 썼어요. 운동에 있어서 기존의 틀이 잘못되었고 ‘전환’이 새로운 운동의 방향이라고 쓴 것 같아요. 그 점에서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문제가 있죠.
신채원 그런데 그때그때 새로워지는 것 아닐까요?
주요섭 그렇죠. 내 생각에는 정리를 다시 해 보고 싶고 용어상으로 다른 용어를 찾고 있지만, 그 안에 ‘자기’, 나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간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이 바로 체계이론 2.0에서 말하는 자기 생성개념이에요. 나를 내가 스스로 만든다,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만드는 과정이 새로운 단계로 점핑할 때 스스로 점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전환’이라고 하는데, Transformation을 번역하면 변형, 변태인데 그것은 또 동학에서의 다시 개벽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자기 재창조’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한살림선언에서도 낡은 세계관과 새로운 세계관으로 말하는데, 내가 늙어가고 있지만 내가 새로워지고 있는 것도 맞는 것같아요. 그래서 제가 보는 개벽은 ‘또 다른’의 의미와 맞는 것 같아요. 매번 또 다른.
글쓴이가 ‘개벽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마음을 먹고 그 첫 번째 사람으로 주요섭 씨를 만났다. 주요섭의 개벽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주요섭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주요섭은 ‘무엇’이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로 묻는다.인간은 스스로 구성한 현실에서 살고 있으며 사회나 집단은 조직이 구성한 현실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각’을 말한다. 그것이 스스로의 개벽이며 더 나아가 ‘마음이 지은 세계’에서 그것을 자각함으로써 얼마든지 또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고, 그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다고 했다. “저는 제로 상태로 갔다가 다시 와야 하는 게 ‘다시 개벽’인 것 같아요. 기존의 질서를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자체에 대한 의문이 필요했던 거죠. 수운이살았던 시대에 태극적 질서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이어 태극의 질서라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무극대도’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자, 그러면 새로운 태극이 나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지금 ‘다시’라는 말을 붙여 ‘다시 개벽’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럼 다시 개벽이 뭐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구성하는 것이니. 개벽은 내가 구성하는 것, 내 마음이 짓는 것, 우리 집단이 짓는 겁니다.”
주요섭
지난 30여 년 지역과 생명, 그리고 전환을 열쇠말로 한살림 등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왔다. 최근 몇 년 동 안 체계와 마음을 화두로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전환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