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채원

돌아보면 함께였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출렁,
결이 다르면 흐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출렁,
우린 결국 만나게 돼 있어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한지 넉 달째 접어들고 있다. 바이러스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바꿔놓았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누구든 하루아침에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상의 모든 관계들은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한편으로는 타인과 공유하는 삶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업무와 모임을 진행하고, 비대면으로 온정을 나눌 방법을 찾는 사람들도 눈길을 끈다.
눈앞의 일상을 내려놓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 엄중한 시기에 ‘멈추고 돌아보기’ 캠페인을 제안한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을 만나보았다. 최근 출간된 책 『개벽의 징후2020』(모시는사람들),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모시는사람들)의 공동저자들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신채원 선생님께서 공동 저자로 참여하신 새 책이 나왔더군요. 축하드립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유정길 어떻게 보셨나요? 흥미롭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개벽의 징후2020』에 저는 두 꼭지의 글을 썼어요. 첫 번째 글은 ‘개벽의 시대, 종교의 미래를 생각하다’라는 제목으로 종교가 이 개벽의 시대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에요. 종교는 점점 줄어들고 종교인이 사라지고 있죠. 과거 중세시대 신 중심의 사회에서는 과학이 종교 밑에 복무하던 시대였어요. 그러다가 코페르니쿠스 이후부터 과학이 계속 종교에 도전하며 근대사회에 역전하잖아요. 종교가 존재하는 방식이 근대사회 속에서, 특히 물질 중심의 사회라고 하죠. 대량 생산,대량 소비, 대량 폐기를 지향하는 사회 속에서 종교의 역할을 다시 묻게 합니다.

신채원 최근에도 우리 사회에, 또 이 시대에 종교의 역할이나 기능, 또 근본적으로 종교를 다시 생각하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죠. 계속 말씀해주세요.

유정길 본래 종교의 기능은 예수처럼, 부처처럼 살아가는 삶을 지향해야 하는데 훨씬 더 많은 풍요와 생산을 지향하고 경쟁하고 대립하는 데 앞장서 왔어요. 환경 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위기를 초래하게 만든 원인에 종교도 같이 복무했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하려면 종교가 갖는 목표 자체도 근본적인 목표로 가야 합니다.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처럼 모든 생명과 사물을 모시고 경외하는 본래의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썼습니다.

신채원 짧은 글인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종교시설에서 예배나 법회 등을 하지 않거나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종교는 이제 눈앞에 보이는 실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오래전부터 메시지가 있었을 거예요. 못 알아차렸을 뿐이죠.

유정길 종교가 더 이상 잘 먹고 잘 사는 풍요와 더 높이 올라가는 것들에 편승할 수 없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끊임없이 이 땅에서 징후들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쓴 두 번째 글은 환경문제를 다뤘습니다. ‘전 지구적 생태 위기는 개벽적 전환을 알리는 메시지’라는 제목입니다. 지금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특히 생태적 관점에서 써봤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이른바 ‘From to’, 어디서부터 어디로 가는 것만으로 주도해 왔어요. 모든 것들을 개체와 개체의 경쟁과 대립으로 보는 것에서 대립이 아닌 상호와 보완과 협력이 근본이라는 것, 그 다음은 물질과 성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숙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직선적 사회가 아니라 순환적인 사회라는 것. 그것을 정리해서 썼습니다. 좀 건조하지 않았나 싶은데 어떻게 보셨나요?

신채원 저는 선생님의 글이나 말씀에서 지금 이 위기상황에서야말로 이 사회전체가 수행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종교적 의식을 떠나서요. 인간이 가진 물질에 대한 욕망은 지속적인 성장을 요구하잖아요. 당장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 내 앞에 있는 일상의 모든 것들에 변화가 왔잖아요. 이런 변화들을 감당하기란 일반인으로서는 쉽지 않아요. 이 위기를 기회로 조금 다른 삶의 방향을 생각한다면 어떤 길이 있을까요?

유정길 작은 욕망을 추구하다 보니 어려운 겁니다. 저는 위로 승부를 보려 하지 않고 옆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위로 성공하겠다는 것은 계속 계층상승이나 신분상승과 같은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는 것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죠. 가만 보면,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전제로 하는 것들입니다. 나는 옆으로 성공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고 옆으로 가는 거죠. 주변 사람들이 잘 되면 내가 잘되는 거예요. 어떤 일을 도모 하는데 있어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내가 하는 겁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연대해서 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고요. 그 다음으로 나는 내가 가진 성공은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무수한 관계자본, 사회적 자본을 갖는 겁니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이 나에게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만나면 반갑고, 그것이 내 삶에서 행복의 요인이라고 봅니다.

신채원 그래서인지 선생님을 만나면 참 행복해 보였어요. 늘 밝은 모습이에요. 같은 말로 저는 결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유정길 내가 위로만 올라가려고 한다면 만나는 사람마다 주판알을 튕기고 계층상승을 위한 대상이 되잖아요. 저 사람을 만나면 내가 기쁘고 즐거울 거라는 생각,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관계가 달라지더라는 겁니다. 환경이나 남북문제, 인권을 생각하다 보니 그런 사람들만 만나게 되더군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환경에 관심이 있거나, 가난한 나라를 생각하거나, 남북문제, 인권,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고 또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 온다는 거죠. 그러면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감동적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내가 마음을 돌리는 그 순간, 내 주변의 인간관계가 다 바뀌는 것이더군요. 어쩌면 세상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바꾸니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 거죠.

신채원 내가 웃으면 세상이 온 세상이 나를 위해 웃는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결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자신감을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혼자 있으면 늘 외로웠어요. 선생님 말씀은 나의 마음이 어떤 쪽을 향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군요.

유정길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사회화 시키면 외롭지 않을걸요? 이를테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가진 욕망을 살펴보면 내 욕망이 사회적이더라는 거예요. 개인적 욕망은 탐욕과 연결 되지만 사회적 욕망은 ‘서원’이라고 해요. 큰 원. 원은 욕망이지만 큰 뜻 같은 거예요. 사람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내게 의지가 있으면 내 필요에 의해 그를 만나러 내가 가는 겁니다. 누군가 찾아와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요. 내 뜻이 있으면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는 것 아닙니까. 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속한 한 세계와 만나게 되는 거잖아요. 사람 만나는 일이 그 사람을 통해 연결된 무수한 네트워크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세상과 접촉하게 되는 겁니다.

신채원 최근 사회적인 현상들을 바라볼 때 사람에 대한 불신이나 관계에 대한 권태도 큰 변화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는 N번방 사건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너무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지만, 저는 관계에 대한 희망이 점점 무너져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유정길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옳고 그름이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본래 없습니다. 믿는다는 게 뭐죠? 신채원씨가 나를 믿는다면, 나를 100% 믿을 수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100% 믿는다는 말은 반대로 0%로 못 믿겠다는 말과 연결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흑백이죠. 내 가까운 친구는 100% 믿고, 가깝지 않은 사람은 그들, 저들로 타자화시켜 100% 믿을 수 없는 것, 어떤 사람을 100% 믿을 수 있다 혹은 없다로 나누는 순간 위험해지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 다양성의 사회겠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지금의 시절 인연과 안 맞는 것뿐이에요. 사회적으로 바뀌는 것들이 많잖아요.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비판받아야 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 비판받아야 하는데, 전면적으로 그를 악인으로 판단해버리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채원 그래서 늘 성찰이 필요한 거겠죠.

유정길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킹덤’이라고 있어요. 좀비물을 보면,좀비는 감염되는 순간 가까운 사람도 단칼에 처단해야 하잖아요. 어쩌면 나도 한때 어떤 집단이 좀비들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과거에 내가 학생 운동하고 그럴 때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돌아보게 되더군요. 사실 악마는 내 안에도 있는 거거든요. 타자화, 우리가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증오를 투사시키는 과정도 사실은 그것에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모습을 투사하는 경우가 있어요. 기독교에서 신천지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고자 모략 전도를 한다는 것, 기독교가 이슬람에 가서 전도하는 과정과는 무엇이 다른가요?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에 대해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나에게도 그런 씨앗이 있지는 않나 돌아보자는 겁니다.

신채원 자연스럽게 ‘멈추고 돌아보기’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최근 ‘멈추고 돌아보기’ 캠페인을 제안하셨죠. 멈추고 돌아보자는 이야기를 전하러 다니시느라 분주하시더군요.

유정길 코로나 국면에서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이렇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봅니다. 바이러스는 국경이 없잖아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경이라는 것도 얼마나 인위적인 겁니까. 바이러스는 그걸 우습게 만듭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가르침은 단 한 명의 수퍼전파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는 보았잖아요.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한 명의 선한 의지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얼마나 많은 사회의 파장을 만들 수 있는지를 새롭게 느끼는 하나의 반증이라고 생각해요.

신채원 정말 멈추고 돌아보게 하네요. 한 사람의 긍정적인 에너지, 그게 바이러스처럼 경계 없이 퍼져 나간다는 메시지는 무지개 같은 희망을 줍니다. 함께 아파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어요.

유정길 그렇죠. 우리가 국경을 걸어 잠근다해도 근본적 자연현상은 국경과 상관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아픔을 느끼는 것, 그것을 통해 대안적 희망을 본다면 한 개인의 깨달음과 행동이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파장을 준다는 겁니다. 이것이 자신감을 줄 겁니다. 그래서 멈추고 돌아보기를 시작했어요. 크게 네 가지입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으니 멈추고 돌아보자는 것, 사회적 관계를 인위적으로 단절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시간이지만 이 과정을 전화위복으로 삼고 조용하고 고요한 삶을 살아보자. 두 번째는 우리는 너무 자기만 생각했다는 겁니다. 가족을 생각하고 주변을 생각하고 아파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돌아보는 것, 세 번째는 우리가 너무 인간만 생각했다는 겁니다. 다른 생명, 환경, 미래세대를 생각해보는 것, 마지막으로 너무 물질만 생각했다는 겁니다. 돈이 아니라 생명 가치를 생각해 보나는 것. 이렇게 네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하루 20분씩 명상의 시간을 갖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봉사하자는 그런 캠페
인을 제안했습니다. 특히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을 혐오하는 것, 환자들에 대한,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야겠죠. 바이러스는 따뜻하면 살 수 없다고 하니, 따뜻한 언어로 끈끈한 온정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신채원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얼어붙어 있었던 거죠. 의료진들의 노력이나 국민들이 서로 온정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이 국면이 지나고 나면 지금의 이 성찰이 큰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희망적인 이야기를합니다.

유정길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맞지 않아요. ‘위생적 거리두기’ 혹은 ‘사회적 연대’ 이렇게 불러야죠. 먼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는 2020년부터 30년까지 기후변화가 심각할 겁니다. 자연적 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 가지고는 안 돼요. 협력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어요.

신채원 ‘멈추고 돌아보기’ 캠페인의 문장들을 오래 읽어 보았어요. 저는 알아요. 이 문장들이 하루아침에 생각난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 아주 오래전부터 품고 살아오셨을 것 같습니다. 자, 이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여쭙고 싶습니다. 너무 바쁘고 분주한 분이라서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돌아보실 때, 운동가이십니까, 이론가이십니까?

유정길 글쎄요. 운동가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변화를 꿈꾸다 보니 내 생각을 정리하는 거고. 활동하면서 즐거움을 포기해본 적이 없어요. 나는 좀 이상주의자인 부분이 있죠. 내가 지향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고 믿으니까요.

선택에 강한 사람

신채원 바쁜 분이시니 남들보다도 더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보셨을 것 같습니다. 늘 선택의 순간마다 기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유정길 나는 선택에 강한 사람 같아요. 어떤 선택이든, 선택을 위해 갈팡질팡 하는 시간이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갈팡질팡합니다. 선택 이후에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을 생각할수록 집중하지 못해요. 나는 선택의 순간까지 많은 고민을하죠. 하지만 선택하고 나서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요. 과거엔 좋은 일을 하겠다, 선한 일을 하겠다고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위인전을 읽거나 가치관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이 선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경험들이 격려가 된 것 같아요. 아버지가 고1때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아주 강한분이셨는데, 폐렴이 와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됩니다. 집이 어려우니까 신문을 돌렸어요. 중앙일보 우수배달원으로 상도 받았어요. 그때만 해도 등록금 안 가져오면 맞기도 하고 그랬죠. 많이 맞고 다녔어요. 그때 마음이 좀 모질었다면, 가출도 하고 그랬을 것 같아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던 순간이 떠올라요. 고등학교 때였는데, 선생님이 그 당시에 3만원을 주시면서 얼른 가 봐라, 하시더군요. 상을 치르고 돌아와서 선생님께 그 돈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선생님 말씀이, “그 돈 나에게 주지 말고 이다음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주렴, 그럼 나에게 갚은 거란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이 굉장히 큰 울림이 되더군요.

신채원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내민 손을 잡아 본 사람은 알죠. 그 빛이 얼마나 따뜻한지를요. 시선을 사회로 돌리고 약자를 향해 손을 내밀게 된 것도 선생님을 향해 내민 손들을 잡아 보았기 때문이었겠죠. 불교와는 어떻게 인연을 이어가게 되셨나요?

유정길 제가 학생운동을 하고 수배를 받아 쫓길 때 절에 들어가게 됩니다. 소림선원이라는 절이었어요. 봉천동에 있는 절이었는데, 수배 중이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거든요. 절이라면 산속에서 유유자적한 곳으로 상상했는데, 갔더니 일반 주택가에 있는 절이에요. 절에 가니까 절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루에 네 번을요. 할 때마다 500번 정도를 했어요. 절을 계속 하라는 겁니다. 누가 봐도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알리바이가 되니까. 그때 법륜스님을 거기서 만났어요. 당시 스님은 아니었고 법사님이셨어요. 우리처럼 학생운동 하다가 제적되고 교도소 갔다가 온 그런 사람들이 모였죠. 대학 때 야학 한다고 교회도 다니고 했으니 기독교운동만 알고 있었으니까, 불교는 별 거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법륜스님 주변에 10명 정도 되는 분들이 있었죠. 나중에 보니 다들 나처럼 운동하던 사람들이더군요. 법륜스님은 그들을 거두신 거예요. 이 애물단지들을 데리고 계셨던 거예요. 그곳에 한 달간 있다가 마지막 날 해인사 수련대회를 가는데, 좀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해인사에 따라갔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지도교사를 하라는 겁
니다. 놀아주기만 하면 된대요. 고등학생 담임을 맡아서 하는거죠. 아니 그런데, 마지막에 3천배를 하라는 거예요.

불교와의 인연

유정길 처음 생각을 이랬어요. 아이들이 있으니 내가 안 할 수 없으니까. 조금 흉내만 내야지, 이렇게 생각했죠. 한 600명이 절을 하는데, 한 1000배쯤 하는데 내가 이게 뭐하는 거지, 싶을 때마다 법륜스님 말씀이 지리산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느냐, 지리산에 올라본 사람들은 아마 동네 뒷산을 우습게 볼 거다, 하지만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동네 뒷산도 못 오를 거다. 큰 일을 해 보면 작은 일은 어렵지 않게 넘어설 수 있는 거다. 마음이 10000배를 한다고 생각하면 1000배, 2000배 그냥 지나간다. 1000배를 생각하면 108배는 그냥 지나가지 않냐. 실제로 기도하다 보니 108배를 하려고 보면 80배 이렇게 넘어가면 숫자를 세게 되는데, 1000배는 7~800배가 고비입니다. 3000배를 하려고 보니 1000배가 우스워지는 거죠.그렇게 속아가면서 3천배를 한 겁니다.
법륜스님의 설법이 굉장한 임팩트가 있었어요. 3천배를 하고도 사람을 재우질 않아요. 촛불 의식을 하더군요. 끝나고 암자에 올라가니 노스님이 계시더군요. 나는 그냥 자고 내려왔는데, 알고 봤더니 그분이 3천배를 해야 만나주신다는 성철스님이라더군요.

신채원 그때부터 불교운동을 계속 해 오신 건가요?

유정길 그렇지 않았어요. 이후 나는 구속이 됐다가 출소하고 우연히 길을 가다가 그분들을 만났어요. 소림선원에서 나와 사무실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일을 돕다가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등에서 큰 충격을 받는 과정에 사고의 깊이에 감동이 있었어요. 그리고 법륜스님과 그 애물단지들의 팀워크가 참 좋았어요. 그들과 모여서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사회가 될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행복할까를 생각하면서 불교적 방편을 기반으로 활동을 했죠. 그렇게 3년만 해보자, 활동하면서 싸우기도 많이 하면서 그런 팀워크가 좋았고 끈끈함이 있었죠. 법륜스님이 잘 이끌어주신 거죠. 이 정도 멤버들이라면 본격적으로 불교 공부를 해도 되겠다 생각했으니까요.

신채원 사회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길을 걷고 계실까요? 건축과를 나오셨다고 들었어요. 건축가가 되셨을까요?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해봅니다. 자, 이야기를 정토회 이야기로 좀 돌려보겠습니다.

유정길 정토라는 말은 완성하면서 가는 과정이에요. 완성된 사회가 정토라고 볼 수는 없고요. 완성된 사회는 권태로울 수 있거든요. 내가 마음을 돌리는 순간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죠. 정토회는 88년에 생겼고 나는 86년부터 함께 그 조직을 만들었어요. 불교사회교육원, 불교사회연구소 이런 조직들이 있을 때였어요. 그러다가 90년에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활동을 접고 새로운 모색을 하려고 폐문정진을 하고 공부를 한 거죠. 당시 사회운동을 하다가 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배신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았죠. 그러다가 법륜스님이 머리를 깎으십니다.
그때 나는 막시스트였죠. 활동을 중단하고 사회주의가 붕괴하는 것을 보면서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니까. 법륜스님을 중심으로 한 몇 사람이 새로운 고민을 하고자 했어요. 그때 나에게 환경 쪽으로 공부를 하라는 제안을 하시더군요. 제레미 레프킨이나 프로조프 카프라 책을 보면서 환경 문제뿐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발전, 성장, 진화가 잘못된 전제로 새워진 것이며 전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거대한 전환이 있어야 하며 그런 메시지로서의 환경 문제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협동조합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보면서 큰 감동도 받았어요.

신채원 생명운동의 태동기라고 볼 수 있는 시기로 볼 수 있겠군요. 사회운동의 모든 분야에서 생명으로 시선을 돌릴 때였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전환, 혹은 개벽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움직임들이 이미 그때 출발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유정길 그 시기 환경 문제를 통해 생산력, 발전, 진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협동조합을 보면서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새로운 시스템을 본 겁니다. 또 하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과거 폭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는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대안사회 모델을 그런 가치에 준하는 행동 양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그 사람이 하는 활동을 통해 미래사회의 이미지가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생산력, 좋은 생산관계-협동조합, 좋은 방법, 좋은 인간으로 사회구조가 바뀌었는데 그 사회를 이끌어갈 만한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사회주의가 붕괴하는 것을 보면서 절실히 깨달았어요. 개인적 욕망을 뛰어넘고 확대시킬 인간이 필요했죠. 그런 것들은 불교에서 노하우가 있었어요.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 등의 축적되어 온 자기 변화의 노하우죠.

신채원 수행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생명 운동이 무엇을 지향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정길 우리는 그때 불교라는 이름도 떼고, 제로 포인트로 갔어요. 기존의 불교가 아닌 철저히 근본적인 입장의 불교로서 가려고 정토회는 ‘만일결사’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매 1000일 때마다 모든 활동을 제로 포인트로 돌리고, 모든 사업도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해 왔으니까 하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일을 꼭 해야 하는지 단체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겁니다.
법륜스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정토회를 만들고 이 산하에 사회단체가 몇 개있습니다. 불교사회교육원, 불교사회연구소, 법당 이렇게 있죠.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법륜스님이 하셨죠. 1993년 만일 결사를 시작하면서 매 1000일마다 다시 백일로 나눠서 매 백일마다 수행, 보시, 봉사 이렇게 세 가지를 기치로 매일 아침 5시에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 1000원씩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회적 봉사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108배기도와 명상을 합니다.
1차, 2차, 3차 이렇게 이어왔고 이제 9차를 넘어서서 마지막 1000일이 남은 겁니다. 3년. 만일결사는 우리가 사회의 한 구석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몇 사람이 시작해서 몇 만명이 된 거죠.

결혼프로젝트

신채원 거대한 담론들이 우뚝 서 있고, 안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실천들이 촘촘히 걸어온 발자국처럼 찍혀 있는 것 같아요. 한 개인, 한 조직은 실현할 수 없는 일들이 함께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물결처럼 흘러온 것 같습니다.

유정길 함께였으니까 가능했죠. 제가 수운회관에서 결혼했어요. 천도교에 입교도 했어요. 정토회를 만들 때 몫돈을 만들 길이 결혼밖에 없었어요. 700명이 왔어요. 정토회 초기에 돈을 마련해야 하잖아요. 과외도 많이 했죠. 다들 학벌도 좋았거든요.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결혼으로 모은 비용은 서오능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초기 활동가들과 함께 법륜스님과 살았습니다. 법륜스님과 합판 하나를 두고 살았죠. 한 10명 정도. 불교사회교육원을 불교환경교육원으로 바꾸고 93년부터 환경운동을 했어요. 그때 내가 하던 환경운동은 자연을 보호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문명적, 개벽의 관점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그런 교육을 계속 했어요. 환경단체들과 워크샵을 하면서 그런 메시지를 확장하려고 했습니다.

신채원 선생님이 걸어오신 길을 듣고 또 바라보면서 불교가 가진 힘을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돌려왔구나,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 소외된 곳으로 움직이셨더군요.

유정길 어떤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분명하게 하는 것이 불교였고, 나를 돌아보게 하고 기도하고 명상하게 만든 것들이 그런 영향일 겁니다. 사회변화와 나의 변화가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했었고 공동체를 살면서 부딪히는 경험도 있었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 그리고 새로운 관계에 대한 설렘도 있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두려움 없이.

함께 하는 기도

신채원 수행에 대한 말씀을 여쭙고 싶습니다. 어떤 기도를 하시나요? 저도 좀 배워보고 싶습니다.

유정길 우리의 수행문이 있어요.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중략.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서 낭독하셨다)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참회문을 읽고 서원, 108배 기도를 하고 명상하고 보왕삼매론을 읽습니다. 기도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신채원 불교에서 말하는 ‘겁’, 이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몇 번 말씀 하셨는데, 어떤 일에 대해 여러 번의 생을 거쳐서 완성한다는. 그렇게 생각하면 만 일은 짧네요.

유정길 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라는 말, 이번 생은 이 일을 하는거죠. 법륜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앞으로 100살은 살 건데 6개월은 없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청년들을 위해서 살아봐라. 이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람을 참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말인 것 같아요. 나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를 다 쓰는 거죠. 정토회의 기본적 삶의 목표는 잘 쓰이는 사람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것은 내 중심의 가치를 갖고 내 삶을 빌리는 건데, 쓰이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잘 이용하는 겁니다. 그 뒤로 밖의 일을 거들어야겠다 싶어서 직책이 많아진 겁니다. 귀농운동도 그렇게 하게 된 것이고 그러면서 한살림하고도 인연이 닿은 거죠.

신채원 늘 분주하게 살아오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네요. 우리가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또 우리는 꼭 무엇인가를 해 내야 하는 걸까요?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는 너무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

유정길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난민촌에서 교육지원사업, 직업교육지원 그리고 식량지원을 하면서 4년간 있었죠. 전세계 NGO에서 긴급구호활동가들이 와 있었어요. 고도가 높은 곳이어서 두통을 달고 살았죠. 한국에 돌아와서까지요. 돌아와서는 평화재단도 만들었고, 이후엔 개발 구호에 대한 글도 쓰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개발구호를 할지 이런 지속가능한 개발방식을 고민해야 했어요. 잘 사는 나라를 모델로 잡고 개발방식을 이식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전세계 사람들이 미국처럼 살 수 없거든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덕분에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겁니다. 불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주 오만한 방식이죠. 우리가 서로가 서로의 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과거의 사고 패턴이 지금을 결정하고 지금이 미래를 만드는 겁니다. 선택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갈팡질팡하는 본인의 문제죠. 힘들고 어렵긴 했지만 나에게는 기쁜 마음과 설레는 마음이 있어요. 불교에서는 퇴불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를 보는 겁니다. 삶을 힘들고 무겁게 만들 때마다요. 뭔가에 걸리는 마음 없이 깃털처럼 사는 것이 수행하는 삶이니까요. 어디에 사로잡혀있거나 집착하고 있는, 생각이 매여있지 않는지 돌아보는 겁니다.
간디가 신발 한 짝을 잃고 한 짝을 더 벗어서 던지잖아요.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해 내는 것은 많은 연습이 필요했을 겁니다. 수행의 힘이었겠죠.

수행이란 무엇일까

인터뷰 끝에 물었다. 이 사람이 화가 나면 어떤 얼굴일까, 이 모습이 상상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신채원 어떨 때 분노하시나요?

유정길 상상이 안 된다고요? 매운 맛을 아직 못 봤군요. 화가 나면 다 괴물이 됩니다. 사소한 일에 분노합니다. 사소한 일에 발끈하면서 내가 이 정도 수준인가. 좌절하죠. 누군가 내 생각에 반대를 할 때, 순간적으로 올라오죠. 어떤 결정을 하거나 말 할 때 내 마음의 기복이 있는 상태라는 건 좋지 않죠. 뭔가에 사로잡혀 있을 땐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겁니다. 돌아보는 것이 수행의 핵심입니다. 계속 돌아봐야 합니다.

돌아보면, 누군가 서 있을 것 같았다.
손을 내밀어 본다.

유정길 _ 불교의 가르침을 사회에 쓰고자 어두운 곳을 찾아 빛이 되는 쪽을 선택했다. 깨어있는 사람들과 깨어있는 삶의 결로 흘러가다보니 물줄기가 되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