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아래가 없고 중심과 가장자리가 없는 모두가 하늘인 세상
– 123보은취회 사람이 하늘이니! 거꾸로 가는 동학 123
이 땅의 민중들이 처음으로 새 세상을 꿈꾸며 한자리에 모였던 그날, 별빛 달빛처럼 고운 얼굴들을 바라보며 한마음, 한뜻으로 흩어지지 말자고 맹세하던 짧았던 밤들이 있었다. 먼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보은이라는 땅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지칠 줄도 몰랐어라. 비가 내리면 비를,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며 단 하나의 빛으로 피어났어라. 뭉쳤다가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 북실 진달래로 붉게 남았어라.
개벽신문에서는 이번 7월호 특집으로 “보은취회 – 거꾸로 가는 동학 1·2·3 ”의 현장을 취재하였고, 보은취회와 함께한 사람들을 만나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다시 살려내려는 끊임없는 목소리를 전한다.
1893년 열렸던 보은취회는 그 이듬해인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그 참뜻을 이어가고자 해마다 열리고 있는 보은취회가 19년째를 맞이했다. 올해는 “거꾸로 가는 동학 1·2·3 ”이라는 이름으로 6월 3일부터 6일까지 보은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열렸다.
올해 초 순천에서 시작된 생명평화활동가 대화마당도 익산과 원주를 거쳐 보은으로 향했다. 보은에서 만난 삶결이 살아 숨쉬는 대안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과 뭇생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자리였다.
왜 보은이었을까? 전국에서 3만 명이 모였다. 보은취회는 우리 역사에 어떤 의미였을까? 보은취회는 5천 년의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행해진 민중들의 집회이다. 한국사 최초로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열린 민회이며, 동학민중혁명의 기반이 된 근현대 민족·민중 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다.
123년이 흐른 지금 “거꾸로 가는 동학”은 앞으로만 달려가는 발걸음을 가다듬고 사람이 하늘이라는 명제로 홍익인간의 사상, 더 거슬러 동이족의 철학까지 닿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혜영 123 보은취회 추진위원장의 소감으로 그 문을 연다.
보은취회를 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채현국 이사장님께 올해 보은취회는 어땠냐고 여쭈니, 참 좋았다고 하시면서 위아래가 없고, 중심과 가장자리가 없었다고 하셨다. 극찬이다. 123년 전 보은에 모인 동학도들이 그랬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상놈과 양반이 없고,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주인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보며 내가 보은취회의 주인이 된 이야기를 해 본다.
5년 전 지인을 따라 보은에 왔을 때는 보은취회에 대한 역사적 사실조차도 모르고 왔다. 그때 일주일 정도를 공원에서 지냈는데 계속 있는 분들도 있었고 왔다 가는 분들도 있었다. 밤마다 술잔을 앞에 두고 사는 이야기를 했다. 드나드는 분들이 보은취회, 동학을 얘기한다. 수운을 존경하고 해월을 좋아하고 무위당을 따르는 분들이 많았다. 그 옆에 있다가 이제는 서당개처럼 풍월을 읊는다.
120여 년 전 보은취회의 모습을 상상하며 올해는 어떻게 오시는 분들을 맞이할까가 고민이다. 나는 고단한 몸들을 쉬어가던 옛날 주막의 주모를 상상하며 동학주막을 한다. 주막에는 사람들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웃음과 애환이 있다. 하루 이틀 여는 주막이지만 이곳도 그러하다. 빈틈 많은 주막에서 맛난 것 대접하는 것도 없는데 고맙다는 치사는 주모가 다 듣는다. 항상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보은취회를 준비하는 우리는 120년 전의 그들과 우리를 연결해 본다.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아마도 그 자리는 새로움을 꿈꾸는 자리였을 것이고 21일 동안 그 새로움을 만들어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새로움을 만들어내야 할까의 시작은 항상 새로운 사람들로 시작된다. 해마다 일의 물꼬를 트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의 중심을 잡아 주는 어른이 있고, 그 일들을 뒤치다꺼리하는 일꾼이 있다. 서로를 모르고 서로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나 싶지만 그 과정에서 일을 해결할 방도가 생긴다. 종종 기가 막힌 인연이 우리에게 시의적절하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올해는 거꾸로 가는 동학 1·2·3이라는 깃발을 걸었다. 거꾸로 가서 초심을 다시 회복해 보자는 기조에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인가는 마지막 회의까지도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막상 취회가 시작되니 호기 넘치는 훈장만 있던 동학서당이 성황리에 진행되어 훈장과 제자들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맞춤형 동학 배움터의 주춧돌이 되었다. 장승 체험 마당으로 시작한 장승 세우기는 단순한 체험이 아닌 취회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채워 주면서 우리의 마음을 모아내는 기둥이 되었다. 위령제와 장승다비식으로 엄숙하게 시작된 취회는 홍익시장과 대동놀이, 락마당으로 활활 타올랐고, 보은취회의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조화롭게 모여 장승을 세우면서 마무리를 하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공원 안은 조그만 마을이 되어 일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작은 마을의 모습을 이뤘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게 처음부터 주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먼저 깃발을 들고 있는 이도 있고, 항상 마음에 두고 있다가 시기가 맞아 일을 차고 하는 이도 있고, 늘 같이 있지만 손님인 이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먹물이 화선지에 스며들듯이 모두 주인이 되어 있다. 4년 내내 과연 이 일이 될까를 걱정했다. 혁명 120돌에 일은 커지고 돈은 한 푼도 없었다. 걱정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지만 만 원부터 백만 원까지 전국에서 후원이 들어왔다. 손이 없어 주막을 열 수 있을까 싶으면 척척 주막을 정리해 주는 이, 김치를 썰어주는 이, 말없이 설거지를 해 주는 이들이 있었다. 주모는 고마워하고 도와주는 이는 자신도 모르는 숨은 요리 실력으로 취회 주방장으로 전격 활약하기도 한다. 처음 손을 맞춘 주방장과 보조들끼리 내년 주막을 약속하기도 한다. 이제는 일이 되겠나 하는 걱정을 놓을 수 있을 듯하다.
들살이를 시작하는 날부터 동학혁명공원은 해방구가 된다. 수도가 없어 불편하다고 하면 누군가 수도를 연결해 주고, 전기 없이 호롱불 하나로 지내는 밤은 운치가 있어 좋고, 밝은 밤은 흥이 나서 좋다. 몸이 불편하면 몸을 만져주는 이가 있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노래와 춤을 선사하는 광대나 소리꾼이 있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 울면 그것을 말없이 받아주는 이들이 있다. 청소년은 청소년끼리, 술친구는 술친구끼리, 목청 높이는 어른과 향기 있는 어른이 조화롭게 앉아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다. 잠자리가 불편해도 아침에는 상쾌하게 일어난다. 이들은 무엇을 하러 모인 걸까….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라는 노래 가사가 유행이다. 이들은 새로운 꿈을 이야기하러 모였겠지. 팍팍한 삶에서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을 만나 소박한 삶, 보람 있는 삶 등을 이야기하고 내가 잘살고 있다는 위로도 받고 그 옛날에 그랬듯이 깃발도 들어 보고 목소리도 높여 보면서한 해 살아갈 힘을 받아가는 거겠지. 취회의 큰일 작은 일을 도맡아 하는 제일의
마당쇠가 마무리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모자란 저를 쓸모있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큰절을 한다.
이제 보은취회가 사람이 사람 되고, 만물을 모시는 자리가 되어가는 작은 걸음에 들어선 듯하다. 123년 전 동학도들이 ‘동학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동학을 한다’라고 했다지. 나도 지금 보은취회를 한다. 1.동학은 사랑입니다. 2.동학은 삶입니다. 3.동학은 사람입니다.
123 보은취회 사람이 하늘이니! 거꾸로 가는 동학 1·2·3 추진위원장 하혜영
5월 28일 ~ 6월 6일 들살이
6월 3일 ~ 6월 5일 동학주막 동학서당 장승마당
6월 3일 위령제, 지게상여놀이, 고사소리, 위령제례, 역사맞이굿, 장승다비식
6월 4일 홍익시장, 여성동학다큐소설, 학생들 작품과 생산품, 볏짚공예체험, 세월호 리본 만들기, 사주풀이, 동학서당 – 보은동학순례,동학풍류마당, 정화수의례, 만인고, 대동놀이, 청소년 樂마당,개똥이어린이예술단, 대안학교, 지역아동센터
6월 5일 장승 세우기
1.동학은 사랑입니다. 2.동학은 삶입니다. 3.동학은 사람입니다.
들살이
행사는 6월 3일부터였지만 들살이는 이미 5월 28일부터 시작되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추진접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들살이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함께 행사를 준비했다. 낮에는 행사 기간 동안 제공할 먹거리와 잠자리, 기타 프로그램들의 진행 사항을 준비하고 점검했고 밤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흥이나면 노래도 한 자락씩 부르며 120년 전 거기에 모였던 민초들처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저마다 꿈을 이야기할 때 반짝이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밤을 밝혔다.
그날이 오면, 정말로 그날이 오면 우리가 꿈꾸는 새 세상이 올 거라고, 더러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 한 줌도 들살이의 밤이 오면 그리웠다. 그렇게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이 밤이 마치 우리가 꿈꾸는 새 세상의 열망과도 같아서 외롭지 않
은 밤들이었다.
동학서당
동학서당은 올해 보은취회의 마당 가운데 동학의 정신을 가장 깊이 새길 수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6월 3일부터 5일까지 동학서당 훈장으로 박맹수 원광대 교수가 자리했다. 3일간 보은취회에 참여한 접주들,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매일 동학서당을 열었다. ‘동학이 꿈꾼 유토피아’(혁명적 성격을 중심으로)를 교재로직접 준비한 박 훈장은 세대를 아우르며 눈높이를 맞춰 동학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또 대립과 갈등이 없었던 열린 사상으로서의 동학, 동국의 학문, 본래의 학문으로서의 동학을 “제 나라 제 땅에서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자는 사상”으로 정의했다.
많은 가르침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모든 사람과 만물이 자기의 본성, 자기의 가치대로, 자기의 결대로 어울려 살도록 만들자는 것이 동학이 꿈꾼 세상이었으며 동학서당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는 마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는 이야기가 행사를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위령제
지게상여놀이와 고사, 위령제례가 함께 이루어졌다. 위령제는 보은에서 목숨을 잃은120년 전의 넋들과 이 땅에서 새 희망을 노래하며 죽어간 모든 이들의 영령들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동학농민혁명공원 내 위령탑까지 지게상여가 올라갔다. 슬픈 상여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곳에 모인 영령들과 미쳐 오지 못한 넋들에게까지 가닿을 듯했다.위령제의 초헌관은 하혜영, 아헌관은 권은숙, 종헌관은 유병옥 선생이 맡았다
역사맞이굿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전체를 하나의 공연장으로, 전문 배우들과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연희자인 동시에 관람객이 되어 보은취회를 재현하고 그 기운을 현재화하는 자리였다.
꼭두광대의 공연이 인상적이었다. 파랑새와 꽃을 사랑한 호랭이, 마고할미탈이 등장하는 역사맞이굿은 혜원상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올해는 특별히 마고할미가 새롭게 등장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장승다비식
오랜 세월 보은취회터를 지키며 민중의 기원을 품어온 장승이 비바람에 삭아 스러졌다. 고단한 삶을 내려놓은 장승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다비식을 했다. 보은 땅에서 목숨을 잃은 영령들과 함께 새처럼, 바람처럼 훨훨 날아 저 세상 어디쯤, 우리가 꿈꾸는 세상 어딘가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안고 갔으리라. 새벽녘까지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홍익시장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 여성동학다큐소설 13권을, 대안학교 참여 학생들의 작품과 생산품을 나누고 볏집공예, 세월호 리본 만들기 체험이 있었다. 또길위 김창환의 사주풀이도 흥미로웠다.
동학서당 – 보은동학순례
보은이라는 슬픈 땅이 가진 역사를 말해 주는 동학유적지를 순례했다. 원광대학교 박맹수 교수의 해설로 대안학교 학생들과 참가자들을 안내했다. 순례는 보은취회지인 장내리 일대와 처참히 짓밟힌 북실 마지막 전투지 일대를 걸었다. 장내리 보은취회지에서 박 교수는 “조선 시대 백성이 임금에게 억울함을 고하는 ‘신문고’와 비슷한 ‘신소제도’가 있었다.”며 “당시 핍박받던 대부분 민중들의 마음을 보듬어 준 동학이 신소제도를 빌려 합법적으로 치른 근대사 최고의 민중집회가 보은취회”라고 평가했다.
당시 보은취회를 기록한 바에 따르면 ‘모인 사람들이 떡값 2만3000냥을 모두 갚았다’고 한다. 질서 정연한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으며 평등한 세상을 열망하는 동학도인으로서의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치러낸 ‘취회’의 모습은 조선 시대는 물론 세계사에도 보기 드문 형식의 민중 집회로 평가 받는다.
보은 종곡리 북실마을은 보은취회 다음 해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전투지였으며 2600여 명의 목숨이 희생된 기록이 있는데, “산이고 들이고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123년 전 목숨을 잃은 동학군과 마을 사람들의 매장지에서 술 한잔을 놓고 절을 올렸다. 뼛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아 관련학자들이 토양에서 사람 뼈의 인 성분이 대량으로 확인되는 몇 곳에 솟대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가슴 속에 먹먹하게 남는다.
동학풍류마당
정화수 의례, 만인고, 대동놀이로 이어진 동학풍류마당은 숙연하게 시작되어 한바탕 신명나는 놀이로 마무리되었다. 동학사상은 동이족의 전통사상과 문화인 <풍류>가 조선조 말의 옷을 입고 나타난 철학이자 사상으로 <지금·이곳>을 사는 우리가 풍류와 동학에 오늘의 옷을 입히는 마당이었다.
물은 생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생명의 꽃이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과 꽃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씻어내는 과정을 정화수의례로 보여줬다. 죽어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긴 세월 슬픔을 안고 평화와 안녕을 비는 모습을. 살아남은 어머니들과 아내들이 평생 아픈 가슴을 잡고 그 고단한 삶과 억울한 삶 속에서 마음을 잃지 않고 세상의 안녕을 빌었던 마음을 헤아리며 소원지에 소원을 쓰고 강강술래를 돌며 마무리했다.
청소년 樂마당
청소년들이 준비한 동학을 주제로 한 락 페스티벌. 자신들의 이야기와 끼를 노래, 밴드, 댄스 등의 공연으로 풀어냈다. 래미학교, 샨티학교, 사랑어린학교 등이 참여하고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이 함께했다.
장승세우기
10여 년을 홀로 서 있던 장승을 다비식의 형식을 통해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들살이와 함께 시작된 장승깎기는 취회가 마무리될 무렵 완성되었다. 추진 접주 중에 목수일을 하는 두 접주가 모여 난생 처음으로 장승깎기를 시도했다. ‘거꾸로 가는 동학’이라는 이름답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만들었다.
나무를 찾기도 힘들었다. 처음이다 보니 망치질이 서툴기도 했다. 어려울수록 돌아서 갔다. 거꾸로 가는 동학이니까.
마지막에 참여한 아이들이 두 목수를 도왔다. 온전히 아이들에게 맡긴 마무리 점안식은 고사리 손으로 콕콕 점을 찍으며 장승의 얼굴을 완성했다.
장승이 세워진 자리에서 장승할아버지라는 노래를 불러준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의 개똥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절을 올렸다.
새 찬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자리를 지킬 장승 할아버지의 안녕을 빌어본다.
<다음 호에는 보은취회와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지게상여놀이
▲ 고사 ▼ 역사맞이굿
위령제 축문
오늘날 우리들이 이렇게 세상에 살아 있음은 동학혁명 영령들의넋과 피가 이 들과 산천에 적셔진 바이라.
이제 여기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르는 것은 동학 민중의 넋을 기림과 더불어 그 꿈을 오늘날 여기 모인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함이니.
동학민중 넋이여, 비록 자그마한 기림이지만 우리의 정성을 기꺼이 받아 주옵소서!우리의 뜻이 가벼이 되지 않도록 세찬 바람에도 꿋꿋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옵소서!
올해 취회는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가던 우리 발걸음을 다시 가다듬어 거꾸로 가자고 하오니 <홍익인간>의 철학으로, 더 거슬러 <동이족의 사상>으로까지 가게 하옵소서!그 발걸음이 동학영령들의 뜻에 닿아 사랑이 먼저이고, 그렇게 사는 삶이 되면, 사람을 존중하게 하옵소서!
원컨대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명제를 삶과 사람과 사랑을 중히 여기는 움직임으로 혜원상생하게 하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리되게 하옵소서!
이 자리에 모인 후학들이 동학영령의 뜻을 받들어 참된 동학으로 살게 하옵소서!
123보은취회 장승다비식 상사리 여기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민중광장에 모이신 하늘님들이여, 여기 누더기가 되어 누워 있는 나무기둥이 보이시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승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000년 10월 29일 보은동학 기념사업추진회와 문화마당 아사달, 보은 민예총이 여러 동지들과 ‘사람이하늘이니, 동학농민혁명만세’를 외치며 민중의 소박한 염원을 담아 세운 장승입니다. 지난 13년 동안 보은취회지에서 세찬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우뚝 서 있던 장승입니다. 그리고 지난 2년 전, 모진 세월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져 지금의 이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으로 옮겨와 구석에서 사그라지고 있던 장승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바래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 세워지고 지켜내고 스러지는 이 장승 또한 자연의 순리. 오늘 우리는 이 사그라진 장승을 다비식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연으로 되돌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태워 없애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의 민중의 소박한 염원을 온 천지에 그윽히 담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이신 접주들과 123년 전 이곳에서 목숨을 바쳐 새 세상을 꿈꾸던 넋들이 모여 이제 여기 쓰러진 장승님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며 삼가 하늘에아룁니다.
하늘이시여, 이땅의 산천초목이시여, 동학의 영령이시여, 함께 하시는 벗님들이시여, 여기 볼품없이 스러져 있는 장승님이시여.
오늘 단기 4349(2016)년 6월 3일, 여기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에 모인 우리 동학의 후예들은 천지의 보살핌과 동학농민군의 핏물과 장승님의 지켜냄으로 이렇게 모여 즐겁게 함께하여 주심에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임을 삼가 하늘님들께 아뢰나이다. 삼가 아뢰나이다.
장승님이시여, 당신은 우리의 염원을 온몸으로 부여잡고 하나, 둘 살점을 떼어내며 지켜 주시었습니다.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온몸으로 사무침을
느끼옵니다.
이제 그윽한 곳에서 다시금 우리와 함께하소서!
상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