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지예 녹색당 정책대변인
달빛이 참 좋습니다. 내가 보는 저 달빛이 당신에게도 가닿으면 좋겠습니다. 저 달이 보름달이거나, 반달이거나, 손톱달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차오를 것이니. 달빛이 밝기도 하여 두 눈에 반짝, 나를 보는 두 눈동자에도 달이 반짝반짝. 빛나는 달빛에 춤추는 물결로 흐르고.
신채원 : 반갑습니다. 우리 서로 자기소개 한번 해 볼까요? 저는 올해로 삼십대 중반이 된 개벽신문의 기자입니다. 개벽신문은 개벽과 동학을 화두로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사람, 정의로운 연대를 꿈꾸며 사람과 생명 이야기를 전하는 신문입니다.
신지예 : 저는 오늘공작소 대표 신지예입니다. 만으로 스물다섯 살입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5번으로 출마했고요, 현재 마포구 망원동에서 청년 활동과 지역 재생을 키워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채원 : “오늘공작소”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 공간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신지예 : 오늘공작소는 원래 청년들에게 청년 자립과 지역 재생을 위해 청년들끼리 모인 단체였어요. 청년들이 활동하려다 보니 공간이 필요해서 2014년 1월에문을 열었습니다. 청년들이 와서 각자의 목적에 맞게 대관도 하고, 모임도 하고,밥도 같이 해 먹을 수 있는, 여러 모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신채원 : 여기서 주로 어떤 작업을 하나요?
신지예 : 오늘공작소가 주로 하는 활동은 인문학 워크숍과 기술 워크숍 두 가지입니다. 기술이 없는 인문학은 허무하고, 인문학 없는 기술은 초라해서 두 가지를 같이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청년들 교육과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요. 몇몇 단체들이 같이 있어요.
신채원 : 이번 총선에 청년 두 분이 나오셨던데, 청년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하나요?
신지예 : 18대 총선 때부터 청년 이야기가 많이 나왔죠. 청년의 정치 참여나 청년을 대변하는 정치에 대한 부각이 있었어요. 여러 정당에서 이벤트처럼 청년들을 뽑기도 했지만 녹색당은 청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청년이 내부에서 참여하도록 하는 ‘청년 녹색당’이라는 정당 내부의 지부에서 청년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어요. 여러 의제가 있었지만 청년이라는 당사자성을 지닌 청년 정치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김주온 씨와 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신채원 : 청년의 정치 참여가 반갑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두 분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신지예 : 신세 한탄을 주로 하다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하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편입니다. 이야기가 막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요. 세상을 뒤엎는 것 말고는답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작년에 중앙일보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니 조사한 청년들의 절반이 대한민국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리셋해야 한다’고 답했더라고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도 그 이야기를 하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요.
신채원 : 청년, 참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녹색당에서는 청년들이 겪는 갈등이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신지예 : 녹색당은 청년 정책이 따로 없습니다. 다른 정당에서는 수당을 준다거나 청년들을 위한 행복주택, 공공임대주택의 수량을 늘리겠다거나 하는 정책을 발표하긴 했지만 녹색당에서는 ‘청년의 문제는 시대적 문제다’라는 문제의식이 있어요. 보통 ‘청년 문제’ 하면 청년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좀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에 매달리는데, 녹색당에서는 청년이 시대적 문제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사회약자라고 봅니다.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에 다른 세대보다 표면적으로 더 많이 겪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 사실은 대부분의 세대들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거든요. 청년들이 겪고 있는 주거 문제, 부채 문제, 소득 문제는 다른 세대도 같이 겪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어서 오히려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정책을 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녹색당에서 왜 청년 정책을 안 내냐고 물어보시기도 해요.
신채원 :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어렸을 때 꿈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신지예 : 매번 달라졌어요.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연극배우가 꿈이었던 적도 있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 두발자율화운동을 했었는데 광화문으로 시위 집회하러 다니기도 했었어요. 그때의 꿈은 시민활동가가 되어 아스팔트 위에서 삼보일배 하는 것이었어요.
신채원 : 중학교 때 했던 두발자율화운동 이후로 10년이 지났는데 그때의 두발자율화운동이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절실했나요? 조금 다른 생각입니다만 규정이 청소년을 보호해 주는 역할도 하지 않을까요?
신지예 : 지금도 두발자율화에 대해서는 절실합니다. 우리의 두발을 학교에서 규정한다는 것이 신체자유권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두발과 교복을 규정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한다면 사회 내부에서의 정치를 미리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가 없고 정해진 교칙에 의해 성인이 될 때까지 견뎌야 하니까요. 또 인간의 권리 중에 가장 원초적인 권리가 신체에 대한 권린데 그것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것이 그런 권리를 보장받는 경험을 배제시키고 다른 권리를 경험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사실 머리로 청소년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요. 지금도 보호받지 못하지 못하는 청소년이 많고, 머리를 짧게 해도 교복을 입어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신채원 : 물론 교복과 두발 규정이 완벽히 청소년을 보호해 주지는 않아요. 청소년 보호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겠죠.
신지예 : 그렇죠. 보호 이전에 개인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이해해야 사회죠. 열아홉 살 때까지 내 머리 길이 하나 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스무 살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요? 청년들을 만나고 손 내밀고 싶은 이유는 ‘어떤 사회를 꿈꾸자’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했어요. 변하지 않는 것 때문에요. 거리에서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저 자리에서 누군가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거든요. 사회 내부에서 또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채원 : 이십대 중반을 넘긴 시점에서 지금의 꿈은 무엇인가요?
신지예 : ‘꿈’과 ‘하고 싶은 것’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하고 싶은 것’은 계속 바뀌고 있어요.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사회적 기업에 들어가서 연극을 만들어 어린이들 교육을 했어요.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교육을 통해 어린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하는 것이 참 의미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두발자율화운동을 했을 때에 ‘인권을 배우기 시작하는 곳은 학교’라고 생각했고 학교 안의 교육문화들과 제도를 바꾸는 것을해 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청년의 문제를 통해 지금 나의 세대를 시작으로 사회를 바꿔나가는 원동력이 되는 일을 해 보고 싶어요. 어쨌든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게 꿈이에요.
신채원 : 대안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데,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 20대로 산다는 것은 어떻던가요?
신지예 : 그렇습니다. 알고 계신 것처럼 저는 일반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대안학교를 나왔고 지금 학력은 대졸입니다. 사이버대학을 나왔어요. 보통의 친구들이 걸어온 것과는 다른 코스로 살아왔고요. 직장 생활도 사회적 기업에서 일했어요. 오히려 저는 제도적으로 정해진 길 밖으로 벗어나니 살기 편하다는 생각을합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취업 자체가 ‘의자 빼앗기 싸움’이라서 안정적으로 의자를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친구들 외에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고 살고 있더라고요.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은 이미 수천만 원의 빚이 있고요. 저는 오히려 스펙이 있다 없다는 것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한 길을 걷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신채원 : 녹색당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녹색당의 공약들은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지예 : 일반시민들을 만나면 녹색당에 우호적인 분들이나 아닌 분들 모두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기본소득 공약만 봐도 ‘내 생엔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3~40년 뒤에나 가능할 거다’, 녹색당이 말하는 핵발전소에 대한 정책들도 ‘탈핵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어요. 그러나 저를 비롯한 녹색당원들은 그 꿈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의지만 모이면 될 수 있다고 해요. 꿈을 꾸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힘을 조금 모으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신채원 : 녹색당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대변하면서 정당이라기보다는 시민사회운동의 성격을띠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원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 모여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신지예 : 굉장히 다양한 분들이 계십니다. 10대부터 어르신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직업군도 다양한 분들이 모두 한 테이블에 모여 다양한 고민을 나누고 있습니다. 녹색당이 지향하는 바로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방향을 알고 계신 분들입니다.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고, 진정한 평등을 꿈꾸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 탈핵, 지구별에 인간들이 지속가능하게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갈수록 놀랍습니다. 각각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신채원 : 우리나라는 산업화를 거치며 너무 빨리 성장했죠. 이제 탈성장의 시대를 맞이했다고합니다. 녹색당에서는 이 전환의 시기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신지예 : 녹색당은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가장 큰 타이틀로 갖고 있어요. 경제, 사회 전반적 부분에서 녹색으로의 전환, 정치 시스템도 그렇고 건설이나 교육 이런쪽이 성장만능주의다 보니 성장하지 못하면 우리는 굶어죽는다는 생각이 베이스가 된 채 사회가 굴러가니까 사실은 인간의 생명, 자연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것 같아요.
신채원 : 왜 정치를 하셨나요? 청년이 꿈꿀 수 있는 밝고 긍정적 미래들이 많이 보였을 텐데, 정치는 밝은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신지예 : 오늘공작소 바로 옆에 부흥주택이라고 60년대에 지어진 노후 주택이 있어요. 백 채가 조금 넘는데 어르신들만 살고 계세요. 망원동이 지대가 낮아서 물난리가 많이 나고 실제로 물난리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도 많아요.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가지고 계신 분들이죠. 재개발 이야기가 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고,어르신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재개발 때문에 쫓겨났다가 다시 들어와서 사시기를 반복하셨어요. 제가 부흥주택을 재작년에 알았는데 그 세월 동안 재개발이라는 이슈 때문에 그렇게 쫓겨나셨던 것을 보면서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부흥주택은 우리나라 근대 건축사에는 꽤 중요한 의미가 있더라고요. 처음으로 핵가구, 핵가족을 위해 보급되었던 주택이거든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권자들의 재산권 증익을 위해서 재개발을 쉽게 할 수 있는 법 제도를 보며 왜 저기 살고 계신 분들의 주거권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르신들과 함께 고민을 하는데 법적으로 막히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예컨대 재개발 부지의 3분의 2이상을 가진 사람이 재개발에 찬성하면 나머지 3분의 1은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한다더라고요. 아직까지도 80년대에 만들어진 제도가 바뀌지 않고 있어요. 그 제도 때문에 빨리 재개발이 진행되는 것이고요. 법이 바뀌지 않고 우리의 삶이 바뀐다는 것은 굉장한 꿈과 욕망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법을 바꾸고 싶었어요.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우리나라 정치 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신채원 : 개인적으로 겪었던 사회적 모순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정치를 하게 되고 녹색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신지예 : 사회적 모순은 늘 끊임없이 겪었죠. 살아가다 보면 없이 사는 것이 죄가되고 그러잖아요. 정치라는 것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정치하다가 사람 버린다고도 하셨고요.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녹색당에 들어오면서 알았어요. 녹색당이 창당하고 6개월 쯤 후에 가입을 했어요. 뭔가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보통 정당에서는 대의원이 되기 위해 굉장히 치열한데, 녹색당 같은 경우는 그 자리를 모두 추천제로 합니다. 뽑기 제도로요. 어느날 전화를 받았는데 갑자기 대의원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대의원회의에 가서 다른 정당과의 차이를 경험했고 그래서 쉽게 정당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보았어요. 또 다른 정치를 보았고 희망을 봤죠.
신채원 : ‘녹색당’ 하면 기본소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어찌 보면 허황된 꿈이라는 이야기도 많고, 참 멀고 먼 길인 것 같습니다. 언제쯤 실현 가능할까요?
신지예 :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이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인류의 직업이 바뀌고 축소될 거라고 말하고 과거 노동을 통해 소득을 벌어 들였던 구조와는 달라질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쯤 되면 노동으로 소득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때쯤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긍정적인 스타트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녹색당이 굉장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거나,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고 하지만 의제 안으로 들어가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성소수자나, GMO, 실질적으로 지역 내부에서 현안이 되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신채원 : 4차 산업혁명을 말씀하셨는데, 그런 시대가 오면 기본 소득을 주장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조금 우려되는 지점은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까요?
신지예 : 녹색평론에서도 그런 논평이 있었죠. 베짱이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 하는가에 대해서요. 사실 고민의 지점이죠. 4차 산업혁명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지 못할 때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도 생각해요. 누구에게 얼마를 준다는 것이 아니고 기본소득권을 제4의 권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을 넘어 기본소득권을 모든 시민에게 줘야 한다는 거죠. 그 나라의 구성원이라면 받아야 할 배당금처럼요. 토지처럼 공공의 자본을 기반으로 소득을 얻게 된다면 응당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요. 인플레이션의 문제는 기본소득에서 찬반이 있는 문젠데 실험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실험군을 만들어서 기본소득을 주고 일을 하는지, 저는 성남이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성남시에서 성남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청년배당금으로 상품권을 지급하고 지역에서 소비되도록 했는데 범위를 좀 넓혀서 실험을 해 봤으면 해요.
신채원 : 이미 이 사회는 가치화할 수 없는 노동이 생겨나게 되고 정신노동은 사회를 풍성하게하죠. 청년들은 어떤가요? 앞으로 어떤 노동을 통해 어떻게 삶을 살아갈까요? 그런 지점에 대해 세대 간의 사회적 대립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신지예 : 다양성을 확보하고 다른 것을 인정하고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회색분자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요. 어떠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확한 자기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두 개 다 옳다고 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제대로 된 이야기들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수이긴 하지만 오늘공작소를 통해 청년을 만나고 여태까지 고민하지 못했던 것들을 고민하게 만들고 삶에서 실천하는 동료를 만나고 싶습니다. 적은 임금을 벌고 스펙 쌓기가 아닌 조금은 다른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는, 비슷한 고민과 경험을 할 수 있는 청년을 끌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신채원 :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조금 덜 벌고 덜 소비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을 루저로 만드는 사회적 담론 또한 문제 아닐까요? 탈성장시대에 자립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청년들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신지예 : 청년들과 실험해 볼 필요가 있어요. 사례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고용의 집중이 아닌 자립의 경험을 해 보고 사회 고민과 합일시켜 보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그런 사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개개인이 그런 사회를 만드는 수단 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청년들은 리셋 말고는 답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도적으로 고착화되어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개개인이 다른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겠죠.
신채원 : 리셋은 좀 위험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어르신들은 지금이 참 좋은 시절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신지예 : 물론 그 말씀들은 옳다고 생각해요. 수십 년, 수백 년을 쌓아온 것을 어떻게 리셋할 수 있겠어요. 지금 청년이 말하는 리셋은 발악으로서의 리셋이지 실제로 뭔가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거예요. 30년 이후에 답이 있다면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청년들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그런 삶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 답은 30년 이후에 만들어지겠죠. 지금 바꾸자는 것은 힘들죠.
신채원 : 30년 뒤를 상상하니 현실적으로 와 닿기는 합니다. 이십대 청년들이 이겨내야 하는 것이 분명해지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의 팍팍한 현실과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신지예 씨는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요?
신지예 : 저는 다 재미있고 즐거워요. 특히 창의적인 일을 할 때 흥미롭고요. 저는 조금 인생의 삐딱선을 탔는데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갈 때 가장 재미있어요.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창의적인 일을 해낼 때, 서로서로 편이 되어주는 사람을 만날 때 참 좋아요. 삶의 방향은 다양한데 길의 문제가 아니고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소비자로서 선택하는 삶을 산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관심 있는 친구들과 무엇인가를 생산해 내는 열정적인 일을 할 때, 앉아서 선택지를 선택하는 게 아니고 그것을 만들어내고 자기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신채원 :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저는 삼십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는데, 삼십대가 되고 보니 이십대때 내가 하는 일이,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나 확인하는 데 청춘을 다 보낸 것 같아요. 신지예 씨는어떤가요? 나의 삶을 온전히 나의 삶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신지예 : 저는 운동과 제 삶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과거에 운동을 하시던 분들의, 몸을 던지는 운동, 나를 희생해서 사회를 바꾸는 그런 운동이 아니고요, 당사자 운동성이 강했어요. 공통의 것을 나아지게 하는 것보다 지금 나에게 닥친 문제를 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모이는 것으로 변화했어요. 나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활동하고 있어요.청년들이 모두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동료 의식을 많이 느끼는 편이죠.
신채원 : 신지예 씨가 바라보는 행복, 희망이라는 키워드는 긍정적인가요?
신지예 : ‘행복하다는 것이 뭐지?’ 하고 물어보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생각하게 돼요. 행복하지 않은 것이 불행하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희망이나 행복도 기준이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희망이 있다고 보고 행복하다고 보는 걸까요? 사회적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희망이라면 제가 그 시스템에 속해 있다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목표 지점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기 어려워요. 삶의 목적이 꼭 행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신채원 : 인간은 태어난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후의 삶은 덤이라고 하죠. 삶이 주어졌으니 우린 살아야 하는 거겠죠.
신지예 : 남미 쪽에서 전해지는 우화인데, 크리킨디 벌새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날 숲에 불이 났는데 숲 속 동물들은 앞다투어 도망을 치죠. 하지만 크리킨디라는 새는 주둥이에 물을 담고 불이 난 쪽으로 날아가죠. 도망가던 동물들이 묻죠.“얘, 도망치지 않고 어딜 가니?” 그러자 새가 대답하죠. “불을 끄려고.” 그러자 동물들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라고 말하죠. 그때 새가 이런 말을 합니다.“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야.”제가 마음속에 담아두는 이야긴데 내가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니 할 수 있는 걸하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가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제겐 오히려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더 힘들어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라면 살아내는 것이겠죠. 저는 이 생각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있었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근대 이전엔 농부의 아들은 농부로, 귀족의 아들은 귀족으로 사는 거였어요. 어느 순간부터 자본주의가 생겨나고 계급들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고 자기 발전을 통해 사다리를 올라갈 거라는 경쟁구도에서 살고 있잖아요. 물론 인간으로서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 권리는 보장되어야겠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다해 사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신채원 : 나의 삶이 곧 모두를 위하는 삶이라는 뜻으로 들리네요. 그것이 고단한 이십대를 살고있는 신지예 씨를 끌고 가는 것 같네요. 건승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통속적 질문을 한번 해 보면, 정치적으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어디까지 목표를 두고 있나요?
신지예 : 그저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하고 싶고, 또 그럴 거고요. 당의 입장으로본다면 다음 총선에는 원내 진출을 하면 좋겠어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두 번이나 상대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나고 온 날은 수 차례 스스로 ‘나는 보수적인가’를 묻고 또 물었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만남에서도 그는 변함이 없었고 나는 스스로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미처 알지 못했던 퍼즐 한 조각을 맞춘다. 이십대 청년이라고 보기에는 말을 참 잘했고, 정치인이라고 보기에는 욕심이 없었다. 청년이라는 이름에 갇혀 있던 이십대 중반의 필자에게 무엇을 이루지 않았어도 충분했다고 뒤늦은 화해를 하게 해 준 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에게 다가 올 서른이 기대된다.
신지예. 1990년생. 오늘공작소 대표. 녹색당 정책대변인으로 20대 총선에 비례대표 5번으로 출마한 바 있다. 마포구 망원동의 오늘공작소에서 다른 내일을 꿈꾸는 청년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